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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 20주년을 맞은 국립남도국악원, 해외 동포 및 국악단체 초청연수 등등국립남도국악원(원장 명현)은 주요 공연과 교육 및 연구 사업 등 2024년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2004년 전남 진도에 개원한 국립남도국악원은 올해 개원 20주년을 맞이한다. 이를 기념해 7월 5일 공식 기념식과 함께 국립남도국악원의 대표 작품인 <씻김굿> 공연을 개최하며, <20주년 기념 토론회> <학술세미나>를 진행하고 <개원 20년사>도 발간할 예정이다. 또한, 7월 한 달 동안 <굿음악축제>를 개최하여 전국의 굿 단체와 진도 지역 예술 단체들을 초청하여 여러 지역의 굿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토요상설 <국악이 좋다>는 올해 더 풍성하고 다양하게 돌아온다. 매달 새로운 주제와 그 구성에 맞춰 무대에 올리는 국립남도국악원 국악연주단의 공연을 시작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진도씻김굿보존회와 예술창작집단 소리하나 등 다양한 전통예술단체를 초청한다. 또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신영희, 이태백 등 최고의 명인·명창을 초청할 예정이며, 광복절을 기념한 명인전에는 정순임, 이성호 등 화려한 라인업으로 토요상설 공연의 기대감을 더한다. 이주배경 및 한부모가족에게 전통예술 관람 기회를 제공하여 가족 간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2023년 새롭게 선보인 <가족사랑 국악공연>은 2024년 3월부터 12월까지 지난해 10회 공연을 올해 총 42회 대폭 늘려 전국 가족센터를 찾아갈 예정이다. 또한, 코로나19로 잠시 중단되었다가 작년부터 재개한 <찾아가는 국악원>도 전남지역 사회복지시설을 찾아가 악가무 종합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며, 지역문화회관 활성화를 위해 해남·완도·구례군 3개 지역 지역을 찾는 지역협업공연은 어린이국악극 <우리랑 진도깨비> 공연으로 지역민들을 찾을 예정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은 운영 내용을 변경하고 확대하여 진행한다. 학생들이 국립남도국악원을 방문하는 <청소년 국악체험>은 공연장만 활용했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국가무형문화재 ‘강강술래’와 사물장구, 민요 등 교과서에 배워왔던 국악을 직접 배울 수 있도록 체험 활동 내용도 추가하여 운영한다. 또한, 전통예술가들이 학교 현장을 직접 찾아가 공연과 물론, 악기 체험 기회와 재미있는 설명이 함께하는 <찾아가는 교실음악회>는 뜨거운 반응과 호응에 힘입어 학교별 시수를 기존 100시수에서 132회로 대폭 확대하여 진행한다. 또한, 지역 청년 예술인 단체들에게 다양한 활동 기회를 제공하고자 사업에 참여할 민간 전통예술단체를 공개 모집하여 파견할 예정이다. 국립남도국악원의 대표사업으로 매회 해외 동포들과 외국인들의 뜨거운 호응과 열정 속에 개최되는 <해외 동포 및 국악단체 초청연수>는 올해도 3월부터 총 10회가 진행된다. 이 사업은 2006년에 최초 시작하여 지금까지 총 18개국 74단체 1,800여 명의 해외 동포와 예술 단체들이 참여하여 한국의 전통예술을 배우고 익혔다. 올해는 개원 20주년을 기념하여 기존에 참가했던 단체 중 5개 팀을 특별 초청하여 본 사업의 결과를 국내에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서울과 부산, 진도에서 총 3회 순회공연을 개최하여 본 사업의 성과를 확인하고 널리 알리는 계기를 갖고자 한다. 여름과 새해에 진행해온 <특별문화체험-보배섬 국악나들이>는 2박 3일 동안 특별하게 할 수 있는 체험이 있다. 여름에는 갯벌체험을, 새해에는 해넘이와 해돋이를 볼 수 있다. 또한, 강강술래와 대동놀이 등의 국악체험과 진도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인 ‘운림산방’과 ‘세방낙조’ 탐방도 할 수 있으며, 또 다른 특별한 체험으로 천연 염색과 서화 체험도 함께 할 수 있다. 가족과 지인 등을 대상으로 매회 60명을 모집하여 진행한다. 2021년부터 시작한 <남도예술아카이빙>은 국립국악원의 국악아카이브 소장 자료 중 전남 지역과 관련된 콘텐츠를 조사‧확보한 후 연구 자료로 발간하여 지역민과 국민에게 제공하는 사업이다. 2023년 진도군 ‘진도의 향토민요-상여소리’를 발간하였고, 2024년 2차 사업으로 해남, 영암, 강진군의 향토음악 자료를 조사·연구하여 국민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가족, 지인과 함께 국악기와 한국무용을 배울 수 있는 <국악문화학교>를 비롯해 교직원과 예비 교직원을 등을 대상으로 하는 <교원직무연수>, <미래교원 국악연수> 등의 국악 연수 사업 역시 올해도 활발하게 추진한다. 또한, 작년에 학교와 동호회 등 11개 단체 351명의 높은 참가율을 보인 <단체연수> 역시 올해도 활발하게 운영할 예정이다. 국립남도국악원 명현 원장은 "2024년은 국립남도국악원이 개원 2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로서, 지역민과 함께 성장하며 지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이바지하는 기관이 되고자 올해도 국립남도국악원 직·단원 모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며 의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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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직업 아카데미, “실무 공부합시다”국립국악원은 오는 오는 20일(화)과 21일(수),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틀간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국악전공생을 위한 직업 아카데미2’를 선보인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개설하는 국립국악원 직업 아카데미2는 국악·무용 전공자에게 미래에 선택할 직업 찾기와 맡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 키우기를 돕고자 마련한 교육 강좌이다. 이번 직업 아카데미2는 미래 국악인으로서의 활동에 기반이 되는 ‘민간에서 국악단체 생존하기’, ‘공연 홍보와 보도자료 쓰기’, ‘예술과 저작권’과 국악자원과 문화콘텐츠산업 분야를 접목해 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하는 ‘영화와 드라마 음악 제작기’, ‘국악으로 TV예능프로 만들기’, ‘게임을 위한 창작 국악 작업기’의 주제로 총 6강좌가 열린다. 첫째 날인 2월 20일(화) 1강좌에서는 공연 제작 및 연출자로 활약하는 천재현의 <민간에서 음악하기: 정가악회 생존만들기>를 들어본다. ‘음악의 밭을 일구는 건강한 농부’를 비전으로, 국악의 모범적 현대화를 추구한 <정가악회>의 대표 등으로 25년간 활동했던 당사자가 민간 예술단체에서 겪었던 경험과 실례를 들려준다. 2강좌에서는 텐트폴 영화와 독립영화, 액션과 시대극, 한국 최초의 오리지널 뮤지컬영화 <영웅> 음악에 이르기까지 맹활약 중인 황상준 음악감독의 <작업 과정과 음악의 역할>을 들어본다. 특히, 사극 <미인도>, <올빼미> 등에서 작업했던 국악의 사례를 소개하고, 이밖에 영화와 드라마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 등을 알려준다. 3강좌에서는 언론 활동 중 전문성을 인정받아 현역 기자 최초로 문화재청장을 지낸 정재숙 기자가 <국악 ‘신나게’ 드러내기: 공연 홍보 관련 보도자료 작성 및 계획 세우기>를 이야기한다. 홍보의 개념과 글쓰기 기초, 홍보 일정에 따른 보도자료 계획 세우기, 홍보 대상 규정과 언론사 특수성 파악하기, 보도자료 작성 등을 소개한다. 둘째 날인 21일(수) 1강좌에서는 대한민국 최초 국악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 경연 프로그램 <풍류대장-힙한 소리꾼들의 전쟁>을 기획한 JTBC 예능 제작 본부 황교진 책임 프로듀서가 <풍류대장을 통해 바라본 국악>을 주제로 이야기한다. 6개월간의 경연 대장정에서 볼 수 있었던 국악인들의 참모습과 방송에서는 담을 수 없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준다. 2강좌에서는 SM, JYP엔터테인먼트 등의 뮤직 퍼블리싱을 담당하고, EBS 교양 프로그램 <클래스 E>를 통해 예술과 저작권법 강의를 진행했던 한국저작권위원회 조채영 연구원이 <예술과 저작권>을 주제로 강연한다. 저작권과 함께 지식사회를 살아가는 이 시대 사회인에게 필요한 법과 권리, 문화와 예술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마지막 3강좌에서는 국내 문화유산을 게임 속에 담아내서 글로벌 150여 개국에 12개 언어로 서비스를 제공, 5,000만 명이 이용하는 선도적인 글로벌 게임 개발사의 위치를 차지한 펄어비스(PearlAbyss) 오디오실 4명의 작곡자가 <검은사막 ‘아침의 나라’ 게임을 위한 창작 국악 작업기>를 이야기한다. 대중과 게이머들에게 국악이 어떻게 다가가면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지에 대해 게임 영상과 사례로 알려주게 된다. 국립국악원 김영운 원장은 이번 직업 아카데미가 "강연자(혹은 작업자)의 작업 결과물과 강연 등을 통해 이 시대 문화콘텐츠산업의 속도와 흐름, 깊이와 너비를 이해하는 열린 소통의 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국악 전공생에게 ‘국악인으로서의 강점을 최대’로 살리고, 나아가 역량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동력과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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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국악협회 이용상 이사장, “회원 국외 공연 지원, 돕겠다”㈜국악신문은 신년기획으로 ‘국악 단체장에게 듣다’라는 난을 마련하였다. 새해는 국악계가 코로나 이전으로 회복이 된 데다 국악진흥법의 시행으로 어느 해 보다도 기대가 큰 상황이다. 이에 즈음하여 전국 국악단체장들의 새해 인사 겸 주요 현안을 짚어 공유함으로써 상호 동력을 추동하고자 기획하였다. 첫 회는 (사)한국국악협회 이용상 이사장의 인터뷰를 싣는다. 코로나로 움츠렸던 국악인들의 해외공연 기회를 확충하는 데 기여하겠다는 메세이지를 전했다. 이번 기획에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편집자註) 특집부: 바쁘셨지요. 단체장이라서 행사도 많고 지부, 지회 행사에도 참석해야 하니까요? 지난해를 회고해 주시지요? 이사장: 예, ‘대한민국국악제’, ‘대한민국예술축전’, ‘전국학생국악경연대회’, ‘전국국악대전’ 같은 큰 행사가 있었습니다. 또 예술단원 실기 운영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이 목동 예총 건물에서 종로 3가 국악로로 다시 이사를 오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정부 보조금과 기업 협찬금 확보를 위해 바쁘게 뛰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여건상 협회 사무국은 목동 예총 건물로 가고, 종로 국악로에는 분원을 두려고 합니다. 국악로를 지킨다는 생각에서입니다. 특집부: 우선 최근 떠도는 문제부터 짚겠습니다. 24년이 임기 만료가 아니냐는 얘기입니다. 어떤 상황인가요? 지난번 선거가 보궐선거였던 건가요? 이사장: 큰 오해입니다. 저를 당선시킨 선거는 선거무효로 새로운 제27대 이사장을 뽑은 선거를 한 것입니다. 절대 잔여임기를 위한 보궐선거가 아니었습니다. 법원 등기에 4월 21일부터 대표권은 이용상 이사장에만 있다고 되어있고, 법인설립허가증, 고유번호증 등의 기재 내용도 이를 반영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제27대 이용상 이사장의 임기는 분명히 2022년 4월 21일부터 4년이라는 사실입니다. 세 곳의 법무법인으로부터 유권해석도 받아 놓은 상태입니다. 소문으로 들었다면 낭설입니다. 꼭 시정하여 주십시오. 특집부: 취임 이전의 송사에 이어 지금도 같은 처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소송 상황은 어떤가요? 이사장: 예, 우선 회원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매듭을 지어야 하는데, 상대측이 실익이 없는데도 계속 소송을 걸어 괴롭히고 있네요. 지난 소송 건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현재의 소송 건은 2022년 4월 21일, 제가 당선한 임시총회 결의에 대해 무효확인 소송을 낸 것입니다. 상대의 주장은 자격이 없는 대의원들로 선거를 개최했으니 무효가 아니냐는 것이고, 또 제가 국악협회 정회원이 아니고 준회원이니 후보 자격이 없었는데 당선이 된 것 아니냐는 관리 규정 위반을 들어 억지를 부리는 것입니다. 또 제가 이사장으로 있던 ‘한국전통예술진흥회’의 사직 시점을 갖고 유사 단체장 겸직을 한 것이라고 문제를 삼은 것입니다. 앞에 것도 그렇지만 이 건은 판례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사직은 사표 수리 여부와 관계없이 사직원을 접수한 시점을 그만둔 시점으로 간주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습니다. 길게 말씀드릴 필요 없이 이제 3월 8일이며 결과가 나오니까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승소를 자신합니다. 전혀 개의치 않고 새해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집부: 이미 국악신문이 몇 차례 기사화 한 바가 있는데, 국악진흥법 통과 이후 시행령 마련을 위한 협회의 준비 상황은 어떤가요? 이사장: 이 문제는 참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래서 우리 협회는 물론 국회, 문광부, 문화재청, 국립국악원 그리고 새로 결성된 한국국악진흥예술연합 등이 좋은 안을 내기 위해 고심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협회는 ‘국악진흥법 발전위원회(위원장 박상진)’라는 기구를 결성하여 전문가 TF팀을 가동해 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8일에는 제5차 회의를 개최하고, 22차까지 진행했습니다. 이 위원회는 각각 10명의 고문과 자문위원을 두어 활발한 토론을 통해 정책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예정하기로는 늦어도 1월 안에 국회에서 많은 전문가들과 함께 그동안 마련한 안을 갖고 정책토론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전 국악인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악의 날’ 제정도 중요합니다. 이미 우리가 낸 보도자료에도 썼습니다만 우리 위원회에서는 정악계와 민속음악계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고려한 의미 있는 날로 정해져야 한다는 원칙에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습니다.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윤곽을 보일 것입니다. 특집부: 새해 24년 역점 사업을 꼽는다면 어떤 일들이 우선인가요? 이사장: 뭐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네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최하는 학교예술강사 지원사업입니다. 안타깝게도 협회가 2년간 혼란을 겪는 시기 모 대학에 빼앗긴 ‘잃어버린 예술강사 지원사업’을 다시 확보해야 합니다. 반드시 회복시켜서 주관 단체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국악협회 회원 전용 공연 공간 마련입니다. 이 문제는 서울시 전 시장 때부터 논의해 온 것으로 아직은 협의 단계입니다만 다각도로 노력하여 결과를 내려고 합니다. 구체적인 장소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세 번째는 국악진흥법 시행령에 국악협회 안이 반영되어 전국 국악인들에게 혜택이 골고루 전해지도록 할 예정입니다. 지난해 문체부 장관과 국악인들의 대화 모임에서도 제가 이 시행안 마련에 국악협회가 많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료를 통해 전했습니다. 이 시행령에 반영될 수 있도록 안(案)을 마련하여 협회가 전문가위원회를 결성하여 정책토론회를 해 오고 있으며, 곧 국회에서 그동안 마련한 안을 갖고 최종 토론회를 개최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네 번째는 국악협회 주최의 ‘대한민국 국악제를 권역별로 나눠 개최하려고 합니다. 서울권, 전라권, 영남권, 충청권, 강원권으로 개최하여 지역 국악을 활성화하는데 기여할 생각입니다. 물론 예산의 뒷받침이 문제입니다만, 보조금을 받는 전문단체가 되어 여러 기업과 MOU 등을 통해 관계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특집부: 국악인들의 해외 활동 지원 사업비를 확보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떤 경로와 목적으로 확보하셨고, 그 목적 사업 수행의 구체적인 계획은 무엇인지요. 이사장: 그동안 회원들을 만나 확인한 것은 코로나로 인해서 해외 공연이 막힌 것을 이제는 가야 하지 않는냐는 호소였어요. 지난 해 후반기부터 수 없이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제 활로를 터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협회 관심 사업을 삼아 추진했습니다. 바로 회원들의 국외 공연입니다. 그래서 후반기 들어 제가 관계 기관에 호소를 했지요. 그 결과 일단 첫 해외공연 목적 기금으로 3억 정도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이 예산이 확정되리라는 소식을 듣고부터 조사를 했더니, 가장 많이 공연을 가고 싶어 하는 나라가 일본이고, 다음이 대만이더라고요. 그래서 현재 예상하기로는 첫 공연으로 일본 2개 도시와 대만 공연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가 예산을 쓰는 만치 꼼꼼하게 준비해서 성과를 거두려고 합니다. 아마 이 두 나라 공연 성과에 따라서는 후반기 예산을 확대하여 받을 수도 있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공연 내용은 협찬금 확보를 하여 풍성하게 개최할 예정입니다. 참여 국악인들에게는 보람을 갖게 하고, 보시는 해외 동포들에게는 조국의 국악 맛을 흠뻑 느끼게 하려고 합니다. 우리 회원 인재들을 동원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자신합니다. 특집부: 끝으로 못하신 이야기나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하시지요. 이사장: 메일로 5가지만 질문을 주셨기에 더 드릴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 하나는 첨부하고 싶습니다. 국악신문에 부탁하는 것입니다. 한국국악협회가 잘되어 국악인들과 소통이 잘되면 국악신문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습니까? 잘 되게 좀 밀어주십시오. 잘된 일과 잘못된 일이 있다면 공정한 잣대로 다뤄야지, 한쪽에 치우쳐 잘못된 것만 키워 곧 어떻게 될 것처럼 다루지는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 자리를 빌어 국악신문 독자분들께 새해 가정에 행복이 깃드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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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남도국악원, 헝가리 '한국문화제'에 참가국립남도국악원은 6일부터 15일까지 헝가리 '한국문화제'에 참석한다. 헝가리 '한국문화제'는 주헝가리한국문화원이 주최하는 행사로 한국과 헝가리의 전통문화와 예술을 소개하고 교류하는 축제다. 해외문화홍보원과 주헝가리한국문화원은 오는 8일(금)부터 30일(일)까지 헝가리 부다페스트 전역에서 "2023 한국문화제”를 개최한다. K-국악 ‘정악에서 민속악까지’를 주제로 한국 전통문화 예술의 시작에서부터 현재까지를 소개하는 대축제로서, 한국 궁중음악의 정수 "종묘제례악”, K-국악의 대표 뮤지션들이 선보이는 "한국음악제”, 한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워크숍 및 심포지엄”, 한국 전통 음악의 서사를 소개할 "영화 상영”, 한국 사찰 제례음식의 향연 "한식행사” 등 한국문화의 총체를 깊이있게 현지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남도국악원은 문화제에서 공연과 연수, 체험과 심포지엄에 참가할 예정이다. 남도국악원은 지난해 10월 주헝가리한국문화원에서 한국의 문화와 예술에 관심을 가진 헝가리 현지인들로 구성된 전통공연팀(14명) 방문을 계기로 문화제 초청을 받았다. 남도국악원 관계자는 "헝가리에서 지난 연수 기간에 배운 내용을 다시 복습하고 판굿과 소고춤 등 새로운 작품도 배울 수 있는 특별연수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음악에 대한 설명과 함께 남도국악원 단원들이 실제 연주를 선보이는 렉쳐콘서트도 주헝가리한국문화원 공연장과 헝가리 카롤리 가스파르 대학교 강당에서 열린다. 헝가리국립민속원에서는 '헝가리와 한국의 전통음악:어제와 오늘'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깊이 있게 소개하고 남도국악원과 헝가리국립민속원, 주헝가리한국문화원 간 업무협약도 한다. 특별연수 외에도 축제를 즐기는 일반 참가자들을 위해 대금과 해금, 판소리와 민요를 배워볼 수 있는 간단한 체험도 준비했다. 남도국악원은 '해외동포 및 국악단체 초청연수'에 참여한 영국 연수팀의 재교육과 행사 지원을 위해 무용단 단원을 9월 15일부터 약 10일간 영국 런던으로 파견해 재교육과 함께 현지 행사에도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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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만에 사할린 '에트노스'아동예술학교 국립남도국악원에서 모국체험국립남도국악원의 해외동포 청소년 모국체험 연수는 2006년부터 매년 진행되어 오다가 코로나로 인해 3년만에 이루어졌다. 8월 7일부터 19일까지 연수를 받고 본국으로 돌아간다. 올해는 에스토니아 아리랑무용단, 우즈베키스탄 고려무용단, 카자흐스탄, 사할린 에트노스 아동예술학교와 하늘팀 학생들이 찾아왔다. 올해 17년차 진행되어오는 사업으로 재외 한국문화원이나 한국교육원의 추천을 받은 입양아 및 해외동포 2·3·4세 그리고 한국음악에 관심 있는 해외동포와 관련된 외국인들에게 모국(한국) 전통문화 체험기회 제공을 통해 조국애와 민족문화의 공감대 형성하고 한국을 직접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하여 한국 문화의 해외 홍보 및 한류 확산을 꾀할 목적으로 5개국에서 참가했다 러시아 사할린에 있는 '에트노스'아동예술학교가 코로나19로 인해 4년만에 진도에 있는 국립남도국악원에 신 율리아 교사의 인솔을 받으며 2주 동안 한국의 전통예술을 배우러 왔다. 유즈노사할린스크시 '에트노스' 아동예술학교는 사할린주와 각 도시, 러시아, 한국 등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참가해 많은 상을 받았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때 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이듬해 제1회 러시아 극동지역 국제포럼과 제15회 러시아 민족문화대회에서 각각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에트노스예술학교는 '러시아 연방 톱 50 예술학교'에 선정됐다. 최근 유즈노사할린스크시 '에트노스'아동예술학교의 '불꽃놀이'타악기 팀(신 율리아 지도교사)이 '러시아 대학생 봄'축제 악기연주 부문에서 '환상'이란 모듬북 컴포지션으로 그랑프리(대상)를 수상했다. 해마다 열리는 이 축제는 한틔만시이스크에서 6월 11일부터 17일까지 진행된 가운데 전국에서 지역예선을 거쳐 우승한 참가자 2000여 명이 이 대규모 행사에서 경연을 벌린다. '불꽃놀이'팀은 대상뿐 아니라 제3회 재능있는 청소년 지원 국가상도 받았다. 사할린 에트노스예술학교 한국전통예술학과는 한인 3∼4세들의 자랑이고, 민족의 얼과 혼을 일깨워준 큰 배움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한국국악협회 진도군 지회 이희춘('진도북춤' 예능보유자)지회장은 15일 광복절 날 기념하여 사할린에서 온 사할린 에트노스 아동예술학교와 하늘팀 학생들에게 진도의 자랑 소치 선생의 그림이 박혀있는 티셔츠를 선물로 전달했다. 국립남도국악원은 2016년부터 '해외 동포 및 국악단체 초청연수(3월~10월, 8회 진행 예정)' 사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포 및 국악단체는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올해 6차가 되는 '2023 해외 동포 및 국악단체 초청연수'는 3월부터 10월까지 8회 정도 매회 약 2주간의 일정으로 진행되었다.참가단체가 원하는 전통예술 과목(사물놀이, 부채춤, 민요, 판소리, 가야금, 대금 등)을 국립남도국악원의 단원들이 지도하며 마지막 날에는 발표회도 하게 된다. 또한, 이와 함께 공연 관람, 국악 강의, 문화탐방 등도 함께 제공한다.해외 현지 관련 기관의 추천서와 함께 신청서(10명~20명)를 제출하면 되고, 항공료를 제외한 모든 비용은 국립남도국악원에서 부담한다.신청 관련 안내는 국립남도국악원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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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 현장에 달려간 국악단체, 향두계놀이보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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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복구 봉사, 국악단체도 있나?이번 집중 호우는 어느 해보다도 피해가 컸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거대한 자연의 힘에는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순간이다. 이런 한탄 속에 놀라운 ‘공감’의 힘을 확인하기도 했다. 20일 행정안전부(행안부)의 집계에 의하면 지난 19일 기준 충남, 경북 등 수해가 심한 9개 시·도에 6347명이 자원봉사에 참여했다는 발표다. 지역별로는 충남 2754명이 가장 많고 충북 1485명, 경북 1170명, 세종 295명, 광주 206명, 전북 204명, 전남 93명, 대전 81명, 강원 59명 순이다. 이들 자원봉사자는 수해지역에서 환경정비 2358명, 침수가옥 정리 1590명, 급식·급수지원 969명, 이재민 지원 827명 등이다. 수해 자원봉사는 각 지역별 통합자원봉사지원단이 중심으로 지역자원봉사센터, 적십자사, 구호협회, 자율방재단 등 지역 봉사단체가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개별적 자원봉사자도 함께하였다.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한 서울, 충남 서천·보령 등 다른 지역에서도 피해지역의 복구를 위해 세탁차·구호물품을 지원했다. 그런데 이 집계에 들지 않은 작음 모임들도 있어 주목하게 된다. ‘한마음회’, ‘부부좋아해봉사단’, ‘함께함께봉사’ 등이 수해 마을을 찾아 가구 정리, 세탁 및 식기 세척 같은 활동을 했다. 훈훈한 소식이다. 이는 인간으로서의 본성인 ‘공감(共感)’능력에 의해 역지사지 측은지심이 발휘된 결과이다. 그런데 이런 봉사 소식 속에 아직 국악인들의 모임이나 국악단체(보존회)가 참여했다는 기사나 소문은 들리지 않는다. 소문 없이 봉사단 이원으로 참여했거나 아니면 소문 없이 활동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기사화 되어 더 많은 국악인들의 공감의 손길이 이어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복구는 거대한 중장비에 의한 것도, 대규모 노동력에 의해 재건축이나 제방 쌓기 같은 일뿐만이 아니라, 작은 손길에 의한 것도 중요하다. 진정한 복구는 일상의 마음으로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마음을 써주는 것이 필요한 이유이다. 인간다음이란 공감하는 능력에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음악 같은 예술행위로써만이 아니라 다가가 조용히 마음 써주는 행위 역시 공감 능력을 발휘하는 일이다. 그리고 노을녘 쯤 구술 땀 닦으며 나직하게 소리 한 자락을 함께 한다면 더 없는 봉사일 것이다. 사족을 단다. 현재 수해복구율은 60%에 이른다고 한다. 아직 손길이 더 필요한 것이다. 자원봉사 안내는 이미 다녀온 분들의 안내를 받는 것이 좋으나 각 지자체 단체 ‘자원봉사센터’에 문의하는 것도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유념할 것은 꼭 필요로 하는 곳에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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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도언 기자, '유네스코 판소리 등재 20주년' 기념 감사패 수상판소리학회(회장:최혜진)가 '유네스코 인류문형문화유산 판소리 등재 20주년'을 맞아 손도언(제천·단양) 중도일보 기자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손 기자는 지난 21일 서울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열린 '제100차 판소리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이같은 상을 수상했다.앞서 손 기자는 지난해 4월 한국기자협회에서 '128년 전 제천서 조직된 국악단체 국내 최초 국악관현악단 타이틀 관심'이라는 기사가 지역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에 선정돼 제379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지난해 국내 최초의 국악단체로 알려진 '청풍승평계'의 실체를 규명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손 기자는 2021년 3월부터 현재까지 '10년간의 취재기록-판소리의 원류는 충청도다'라는 100편의 기획 시리즈를 연재 중이다. 지금까지 이와 관련된 기사 61편을 보도했다. 손 기자는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3월까지 총 15회에 걸쳐 1893년 제천시 청풍면에서 조직된 128년 전 우리나라 최고(最古) 국악 단체 '청풍승평계'라는 국악관현악단의 존재를 집중 조명해 호평을 받았다. 한편 이날 제100차 판소리학회 정기학술대회는 판소리학회, 사단법인 세계판소리협회(이사장 채수정), 국립국악원 등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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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군산에서 무형문화유산 공연 열린다5월 16일 연천군 수레울 아트홀과 6월 2일 군산예술의전당에서 ‘2023년 찾아가는 무형문화유산 굿(GOOD)보러가자’ 공연을 각각 개최한다.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은 국방부, 군산시, 한국문화재재단과 함께하는 올해로 20년째를 맞는 ‘굿(GOOD)보러가자’는 국립무형유산원이 2004년부터 전국 방방곡곡에서 운영해온 전통공연 프로그램으로, 무형문화유산 보유자부터 융합(퓨전) 국악인에 이르기까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예술가들의 향연을 느낄 수 있는 문화의 장이다.먼저, 16일 오후 3시 연천군 수레울 아트홀에서는 육군 제5보병사단 장병들을 대상으로 공연이 개최된다. 이번 공연은 한국민속촌 출신 배우 고평화와 정해은의 사회로 진행되며, ▲ 진도북춤, 부채춤 등의 전통 공연과, ▲ 국악단체 광대놀음 떼이루의 만담, ▲ 국악단체 소리꽃가객단과 JTBC 국악경연프로그램 ‘풍류대장’ 출연자인 이윤아가 선보이는 융합(퓨전) 국악 공연에 이르기까지 전통문화에 세련된 감각을 녹여낸 다채로운 구성으로 진행되어 우리 국군장병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이어서, 6월 2일 오후 7시 30분 군산예술의전당에서는 군산시 산업단지 근로자를 대상으로 공연이 개최된다. 국악인 오정해의 사회로 진행되는 이번 공연에서는 ▲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보유자 김일구의 적벽가, ▲ 국가무형문화재 보유단체 진주삼천포농악의 다채로운 가락, ▲ 국악연주가 김주홍과 노름마치가 선보이는 신명나는 대취타, ▲ 음악집단 우리소리 바라지가 보여주는 무(巫)의식과 춤이 가미된 축원, ▲ 가수 송가인의 무대를 만나볼 수 있다.‘굿(GOOD)보러가자’ 군산 공연은 무료로 진행되며, 관람을 원하는 산업체 근로자는 5월 15일(월) 오후 2시부터 19일(금) 오후 2시까지 5일간, 일반인은 5월 23일(화) 오후 2시부터 31일(수) 오후 2시까지 9일간 티켓링크(www.ticketlink.co.kr)를 통해서 선착순(1인 2매)으로 예매할 수 있다.공연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한국문화재재단(연천군 공연:☎02-3011-1720, 군산시 공연:☎02-3011-1720)으로 문의하면 된다.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은 앞으로 충북 옥천군(7.7.), 경남 진주시(9.13.), 경남 하동군(10.19.)에서 ‘굿(GOOD)보러가자’ 공연을 차례로 선보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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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희국악예술단, '2023하동세계차엑스 대한민국 명창대전' 개최한다지난 4일 1,200년 역사를 이어온 국내 최대 야생차 생산지 하동에서 '세계 차 엑스포'가 개막했다. 하동야생차박물관 및 하동스포츠파크 일원에서 오는 5월 4일부터 6월 3일까지 한달동안 개최된다. 하동군과 '손양희국악예술단'은 하동세계차엑스포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국악경연대회를 개최한다. 명칭은 '하동세계차엑스 대한민국 명창대전'(05.11-12.)과 '하동세계차엑스 전국청소년국악경연대회'(05.27.)을 개최한다. 도지정전문예술단체 '손양희국악예술단'은 대한전통예술보존회 경상남도 지회를 맡고 창원 지역을 비롯해 경상남도와 타 시도의 축제, 기념비적인 행사 등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다양한 축제와 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2009년부터 창원어린이국악단,' 대한전통예술보존회' 경상남도 지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단장과 지회장을 손양희 단장이 맡고 있다. 특히 25년째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를 개최해오고 있다. 25년 구독자인 손양희국악예술단의 활동과 전국국악경연대회 진행에 대해서 국악신문 기미양 객원기자가 손양희국악예술단 손양희단장을 한달동안 전화와 방문을 통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편집자 주) 손양희 국악예술단 설립목적과 전승활동 Q. 손양희 국악 예술단 설립 목적은 A. 손양희국악예술단은 민족예술의 정수 국악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몸으로 느끼고 배우며, 나아가 우리 음악을 이끌어갈 전문 국악인의 밑거름인 차세대 명창과 명인들을 육성할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Q. 손양희국악예술단은 언제 조직되었나요 A. 손양희국악예술단은 창원에서 1996년 제1회 창원 전국국악경연대회를 개최를 주관하면서부터 조직되었다. Q. 손양희국악예술단 소개해주세요.. 설립 목적, 전승활동, 회원수.전승활동 A. 손양희국악예술단은 1995년 손양희국악교습소로 시작하여, 2007년 손양희국악예술단으로 거듭났다. 도지정전문예술단체 ‘손양희국악예술단’은, 자체 기획공연과 시, 도, 국가 공모사업을 기본으로 실행하면서, 각 시군의 축제나 국가 공식 기념일 행사에 초청을 받고 전국 순회공연을 한다.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을 비롯 미국, 유럽 등 20여개국 해외 순회공연을 하며 폭넓게 공연 활동을 하는 전문 국악공연단체이다. 또한 후진양성과 계승발전을 위해 규칙적인 전승교육 활동에도 30여 년간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올해로 26회차가 되는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를 통해, 인재 양성발굴에 핵심 사업 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전문예술단체이다. 회원은 100여 명과 예술단원은 25여 명이 활동한다 Q. 초대회장, 역대회장은? A. 초대 대회회장은 1996년 당시 창원국악협회장이셨던 故 박미숙선생을 필두로 노키아티엠씨 이재욱 회장, 공민배 전창원시장, 현, ㈜부경 김찬모회장으로 연결되어 국악발전에 도움을 주고 계신다. 26년이 되는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 Q. 1996년 제1회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가 올해는 26회가 되는데, 언제부터 손양희 회장이 이어오고 계시나요 A. 1996년 제1회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를 개최하였으나, 창원 국악협회장의 별세로 존립의 기로에 선 국악경연대회를, 2년 지난 1998년 제2회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를 25살밖에 안된 제가 맡아서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작년 11월까지 제25회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를 개최했다. 초반기 국악 불모지 창원에서 이 국악경연대회를 알리기 시작할 때, 국악신문 김호규 사장님이 많이 도와주셨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Q.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가 올해 26년 돐을 맞이하는데, 자랑 좀 해주세요. A.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는 창원이 공업도시라, 예술 장르 특히 국악 분야는 아직도 열악한 편이다. 하여 고른 발전을 꾀하며 종합대회를 유치했다. 종합대상은 국회의장상이며,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교육부장관상, 도지사상, 창원시장상, 도교육감상, 시교육장상 등 판소리, 기악, 민요.가야금병창, 무용, 풍물... 5개부문을 각파트에 5분의 권위있는 심사위원을 모시며 투명한 대회를 만들어 왔다. 그 결과 문화관광부에서 3년마다 실시하는 평가에서 작년(2022년)은 B+ 등급과 그 3년 전에는 A등급을 받아 공명정대하고 내실있는 우수대회로 평가받았다. Q.최근 서울에서 하동차엑스포 알리기 행사를 했는데..오셨나요? 특별한 행사가 있었나요 A. 그날 행사가 이미 잡혀 있어서 참석못했다. 특히 ‘수사반장’과 ‘전원일기’ 김 회장으로 유명한 국민배우 ‘국민 아버지’ 최불암 씨를 행사 중 2023하동세계차엑스포 명예 홍보대사로 임명하는 뜻깊은 위촉식도 가졌다는 소식을 방송을 통해 들었다. '2023하동차엑스포'와 '2023하동차엑스포 대한민국 명창대전' Q. '2023하동차엑스포' 소개해주세요. A. 산수가 아름답고 인심 좋은 하동... 1,200년 역사를 이어온 국내 최대 야생차 생산지 하동이지요. 하동야생차박물관 및 하동스포츠파크 일원에서 오는 5월 4일부터 6월 3일까지 2023하동세계차엑스포가 개최된다. Q. 전국에서 산수가 아름답가로 유명한 하동의 유래에 대해 자랑 좀 해주세요. A. 통일신라시대 최치원 선생은 하동의 아름다움을 ‘호중별천(壺中別天)’으로 표현하며 ‘동쪽 나라 화개동은 호리병 속의 별천지라 신선이 옥베개를 밀치니 순식간에 천년이 되었네’라고 극찬했다. 천년이 지난 오늘날 바로 세계적 차(茶)의 주산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Q. 이번 손양희국악예술단에서 하동세계차엑스포를 널리 알리기 위해 개최하는 국악경창대회 취지는 A. 2023 하동세계차엑스포를 널리 알리기 위해 '2023 대한민국 명창대전'과 '2023 전국청소 년국악경연대회'을 개최한다. 이는 세계가 주목하는 엑스포장에는 신명나고도 우수한 우리 전통음악인 풍악이 빠질 수 없으므로, 단순한 경연대회가 아닌, 축하공연 같은 경연대회를 통해 우리음악의 신명, 전통성을 하동을 찾은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함으로 엑스포장을 더욱더 활기차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을 꾀한다. 손양희 명창 국악계 입문과 국악활동 Q.국악계 입문은 어떤 계기로 언제 들어오셨는지요. 스승은? A. 부산에서 태어나서 초등학교 3년에 한국무용에 입문하였고, 초등학생때부터 노래를 잘 부른다고 인정 받아, 합창부 활동도 활발하게 하였다...한국무용에도 두각을 나타내며 열심히 하였으나, 고2때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부유한 가세가 기울자, 9년 동안 받아온 무용교습은 포기해야 해서 절망적이였다. 그런데 그즈음 한국국악협회 창원지부에서 판소리 무료 강습회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 무작정 찾아가서 판소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판소리가 나를 다시 소생시켰다. 故 선동옥 선생님(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9호 판소리 ‘수궁가’ 예능보유자) 입문하여 지금껏 소릿꾼의 길을 열심히 걸어가고 있다. 故 선동옥(수궁가), 故 이명희(흥보가,춘향가), 故 한갑주(적벽가), 성준숙(심청가)선생님들께 이수를 받았다. 2008년 12월에 경상남도 무형 문화재 제 9호 판소리 '수궁가' 전수조교로 지정되었다. Q.손양희 선생님 전국경연대회에서 상을 많이 타셨는데, 가장 큰 상을 받은 때는 언제인가요 A. 2017년 판소리 입문 32년만에 제28회 대구국악제 전국국악경연대회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2005년 제16회 대구 국악제에서 판소리 부문에 참가하여 종합대상 국무총리상을 받은후 12년만에 받은 상이다. 이때 가장 공력을 많이 들였을 때, 받은 상이다. Q. 창원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국악단체로 손꼽히는 손양희국악예술단 자랑 좀 해주세요. A. 국악 분야를 전공하는 대학의 학부 출신 또는 재학생을 회원이 많다. 그만큼 젊고 활력 넘치는 전문 국악단체이다.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대상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한 김선희, 타악과 풍물로 전국 국악 경연 대회에서 종합 대상인 문화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한 송기혁, 가야금 전공의 김수아 등이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부터 겨울방학 여름방학 기간 ‘2008 국악학교’를 개설하여 창원과 주변 국악인을 대상으로 현재까지 지속해오고 있다. 그래서 창원은 물론 경남에서는 널리 알려진 국악단체이다. Q. 가장 뜻깊고 추억에 남는 공연은 A. 2003년 10월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명기이자 여류 문인으로 꼽히는 황진이를 소재로 한 창극 '황진이'를 창원 성산아트홀 대극장 무대에 올렸다. 국립 창극단 수석 단원 등 주요 출연진과 연출, 시나리오, 음악 등 주요 제작진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주인공은 창원 지역의 소리꾼을 대표하여 제가 황진이 역을 맡았죠. 대한전통예술보존회 경상남도 지회가 제작한 최초의 경상남도 지역 창극이었다. 2006년에는 창원 성산 아트홀 소극장에서 '제2회 손양희 판소리 '수궁가' 완창 발표회'를 가졌다. 2009년 창극 '토끼야 수궁가자' 에서 창원에서 연출자를 구하지 못해서 연출과 주인공을 맡았다. '황진이' 역과 '별주부'역을 맡은 때가 저희 소리에 대한 정열을 태웠던 시절인가 보다. 수궁가 완창발표회가 큰 동력이 되었다. 이후 큰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Q. 기억에 남는 해외공연은 A. 2011년 캄보디아에서 ‘앙코르왓에서 한국의 아리랑 콘서트’를 공연하였다. 우리가 갔던 곳은 캄보디아의 우리나라의 불교인 조계종이 세운 고아원 겸 보육시설 '아름다운나라'이다. 그해 여름 창원어린이국악단 14명의 학생들은 여름방학을 맞아 지리산 산공부(합숙) 대신, 봉사 차원으로 15일 일정으로 갔다. 원장님은 조계종의 스님이셨고, 직원들도 한국분들이 고생하고 계시며,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우리는 캄보디아 학생들과 교류 및 캄보디아 학생들에게 풍물과 민요를 가르키며 함께 공부하고 신나게 뛰어 놀았다. 우리 창원어린이국악단 학생들이 신명나는 공연도 선보여주는 등 우리 전통음악의 우수성과 신명을 잘 전달하고 왔다. 이는 학생들에게 봉사하는 마음과 우리 국악의 뿌듯한 자긍심을 가지게 했던 큰 계기로 기억된다. 양명창은 어려운 청년기, 국악에 입문하면서 판소리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한다, 일찌기 20대 중반에 제2회 창원전국악경창대회를 맡으면서 국악활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대구국악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명실공히 판소리 명창 반열에 올랐다. 가무악에 타고난 재능으로 판소리·풍물·전통무용 등을 섭렵하고 공연 연출까지 해오고 있다. 그 배경에는 초창기 2003년 뮤직컬 형식 창극 작품을 맡았지만 창원에서 국악 분야 연출자를 찾지 못해서 시작했다고 한다. 도지정전문예술단체 ‘손양희국악예술단’의 전승활동 Q. 하동 출신으로 유명한 국악인 누구신가요 A. 여러분이 계셨지만, 손꼽히는 두분을 소개합니다. 하동 악양에 '명창 유성준, 이선유 판소리 기념관'이 있는데, 유성준(1873~1949)명창은 판소리 근대 5대명창중의 ‘동편제의 제왕’으로 불리어졌으며, 하동 악양면 신대마을에서 활동하시다 세상을 떠나시고, 이선유(1873~1949) 명창은 송우룡 명창과 김세종 명창에게 사사했고, 최초로 판소리 다섯마당 창본 '오가전집'을 펴냈으며 진주권번의 소리사범으로 활동하셨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손꼽히는 두 분의 명창이 하동을 기점으로 폭넓게 활동을 하셨고, 이 두 분을 기리는 판소리 기념관이 하동 악약면 있으며, 판소리 전승발전을 위해 중점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Q.그동안 창원에서 국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요 A. 첫째로는 판소리를 30여년간 후학을 가르키며 차세대 인재 양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자체 기획공연 및 타 지역 축제 기념비적인 행사이 공연과 시, 도, 국가의 다양한 공모사 업 지원 및 선정으로 경남을 비롯하여 국내외 등 수 많은 순회공연을 하였고, 26년째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를 개최하며 인재 발굴과 대중화에 힘쓰면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Q. 가장 좋아하시는 민요는 A. 우리의 민요는 웬만하면 다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 '육자백이', '흥타령'을 특히 좋아한다. 구성지면서 질펀한 우리네 삶이 녹아있어 절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다. Q.한국국악협회 창원시지부, 하동지부와 같이 국악활동을 하시나요 A. 초창기 한국국악협회 창원지부 창단 맴버였으나, 현재는 협회 활동은 하지 않고, 개인적이지만 공적인 일을 하며 활동하고 있다. 한국국악협회 하동지부는 풍물놀이, 판소리, 한국무용 등을 통해 지역민들에게 국악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저변을 확대하며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Q. 하동에는 어떤 축제가 있나요. 그 축제에서 판소리를 많이 알리고 계시죠 A. 하동 송림 백사장과 섬진교에서 정월 대보름 달집태우기 및 다리밟기 행사,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흥룡리 먹점마을에서 산골 매실 매화 축제, 제17회 화개장터 벚꽃 축제, 하동군민의 날 기념식, 새해맞이 공연, 하동 야생차 문화 축제 등에 초청 받아서 판소리를 알리고 있다. Q.코로나 3년간 경창대회 치루시면서 힘드신 부분은 A. 비대면이라는 새로운 방법에 처음에는 우왕좌왕 했지만, 곧 적응이 되었고 큰 어려움 없이 대회를 치뤘다. 예상보다 많은 지원자가 참가해주었다. Q. 20대 중반부터 쉬지않고 30여 년이 넘게 공적 국악활동 단체를 이끄시면서 힘드셨던 점, 보람이 되신 점은 A. 국악단체를 이끌어 간다는게 다른 단체도 그렇겠지만, 경제적으로 녹녹치 않아 어려움도 있고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단원들과 더불어 함께 하면서 지혜를 모으고 마음을 모아서 슬기롭게 해결하며 걸어 온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지역에서 후원자들도 차츰 생겨나면서 공고히 자리를 잡아가며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Q. 국악발전을 위해 한 말씀하신다면. A. 우리 경남에는 대학에 국악과도 없고, 시립.도립 국악예술단체도 없다 보니, 국악발전에 악순환이 되고 있다. 특히 영남민요는 동부민요로 몰아가서 딱히 배우려는 사람도 없고, 서울까지 가서 경기민요를 배워서 이수증을 받고 학원간판을 내걸고 있다. 이렇게 국악발전이 타 시.도에 비해 열악한 현실을 못 벗어나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회원들과 창원시립 또는 도립국악단 창단을 희망하며 오늘도 묵묵히 걸어 간다... 도지정전문예술단체 ‘손양희국악예술단’의 전승활동을 통해 경상남도 창원 지역 국악 발전의 현황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다. 올해 26회를 맞이하는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를 통해 국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뒤에는 손양희국악예술단의 노력이 숨어있다. 이러한 활동을 인정 받아서 이번 하동군과 함께 하동차엑스포 대한민국 국악명창대전을 개최하게 되었다.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가 된다. 손양희 2012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9호 판소리 ‘수궁가’ 예능보유자 후보. 2003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 한승호 '적벽가' 사사. 2005 대구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흥보가’ 예능보유자 이명희 '흥보가' 사사 2020 전북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 성준숙 '심청가' 사사 경상남도판소리보존회장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 총집행위원장(26회) 경상남도무형문화재 판소리전수관 외 다수 출강 도지정전문예술단체 ‘손양희국악예술단’ 대표 (2016~2022) 동국대학교(한국음악과-판소리) 외래교수 (2005~2008) 마산창신대학교(음악과-판소리) 외래교수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판소리 학사 및 석사 졸업 2017 제28회 대구국악제 전국국악경연대회 ‘대통령상’ 2016 제24회 전국전통공연예술경연대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2016 제25회 땅끝해남 전국국악경연대회 명인부 대상한국문화예술위원장상 2016 제19회 서편제 보성소리축제 명창부 우수상 '전남도지사상' 2015 제3회 미주 한국국악경연대회 '지도자상' 2006 제16회 대구국악제 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 종합대상 국무총리상' 2005 제2회 DELPHIC GAMES(문화올림픽) 한국대표(판소리) '단체우수상' 수상(말레이시아 쿠첸) 2003 제21회 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부문 명창부 최우수상 '전남도지사상' 2000 제2회 여수 전남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부문 명창부 '우수상' 2000 제18회 광주특장부문 판소리전국대회 특장부 '우수상' 1995 제6회 대구 전국국악제 '금상' 1989 제8회 창원 고향의 봄 축제 전국민요경창대회 '장원' 1985 제30회 부산 영남무용제 '최우수상' 1979 제1회 영남지구 무용콩쿨 '특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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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봄내(春川)아리랑’!"소양강 맑은 물 춘경(春景)좋기로 봄내(春川)로구나 아리랑고개가 왠고개 쓰리랑고개 왠고개 곰실곰실 넘어간다” 강원도 춘천의 풍광, 특히 봄의 풍경을 그린 아리랑이 탄생했다. ‘봄내아리랑’이다. ‘봄내’는 ‘春川’의 우리말이다. 이 아름다운 지명은 태조 왕건이 봄 풍경이 빼어나 ‘춘주春州’라 한데서 유래한다. ‘봄내아리랑’의 탄생, 1929년 파인 김동환의 ‘아리랑고개’로부터 시작된 창작아리랑은 60여 편에 이른다. 이에 의하면 이 ‘봄내아리랑’은 막내 창작아리랑이 된다. 이 봄내아리랑은 15일 아리랑 등재10주년 기념비 건립 백일 기념공연에서 발표된다. 발표하는 국악인은 오현승씨, 국악계에서 아는 이들은 다 아는 중진그룹으로, ‘진정한 국악인’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사패산 원각사 사무장(법명 眞德)이라는 신앙인, 서도소리와 향두계놀이 30여년의 활동, 사찰 사무장과 국악단체 사무국장이란 봉사자라는 평가에서 주목할 만하다. 봄내(춘천)아리랑 작사 작곡/이상균 소리/오현승 아리아리 아리랑 쓰리쓰리 쓰리랑 아리랑고개가 왠 고개 곰실곰실 넘어간다 오근내 조근내 날아드는 봉황 소양강 맑은물 춘경좋기로 봄내로군아 반짝이는 별빛 대룡산 눈꽃 의암호 물결 넘실넘실 웃어있네 골골흐르는 곰내천 물길 공지천 따라서 의암호에 노니는구나 신용연 백로주 의암품에 숨고 봉의산성 푯말뿐이로구나 금병산 산마루 무성한 억새 광풍 불어도 꺽일 수야 있겠나 명봉 순정마루 흐드러진 들꽃 이름 없이 향기뿐이로구나 봄내 둘러친 구곡평풍 날아드는 백화 부르나니 함포고복 수새 곧은 은행나무 소박한 산까치 두루 펼친 의암호 산수좋은 우리봄내 후렴과 총 8절의 사설이다. 춘천의 지명 유래, 의암호에 의한 ‘호반의 도시’ 성격‘, 진산 봉의산의 위상, ’둔갑이 고개‘의 유래, 특히 대룡산과 의암호의 위용을 통해 춘천을 에워싼 풍광을 노래했다. 후렴은 "아리아리 아리랑 쓰리쓰리 쓰리랑//아리랑고개가 왠 고개 곰실곰실 넘어간다”이다. ’아리‘나 ’아리랑‘을 포함하는 2행 3음보라는 형질을 유지하고 있다. 작사, 작곡, 편곡자는 이상균선생이다. 이상균의 창작 아리랑 작업에는 이미 레거시(legacy)가 형성되었다고 볼 정도이다. 나름의 규정을 필요로 할만큼의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2014년 서도소리 유지숙 명인의 음반 ‘우리 아리랑’ 14곡을 통해 주목을 받았다. 제주아리랑에서부터 강동아리랑까지 14편의 아리랑 발표인 데, 굳이 규정하자면 ‘지명 아리랑 완창’으로 볼만하다. 이후 이상균의 작업은 두물머리아리랑, 숯고개아리랑, 양주아리랑, 포천아리랑, 김해아리랑에 이어 봄내아리랑을 발표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성가를 전통 시가 입장에서 더 적극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즉 ‘영사(詠史)아리랑’ 또는 ‘아리랑악부(樂府)’으로의 규정이다.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 사적을 계기로 삼아 작가 자신의 문제의식을 빗대어 표현하거나 당대의 현실을 풍자 또는 경계하려는 의도에서 지어진 시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리랑은 강원무형문화재 1호, 국가무형문화재 129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란 3겹의 위상을 갖고 있다.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한다는 다짐을 석비에 새운 것이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비이다. 아리랑의 창조적 계승이란 자발적 전승 활동으로 형질을 유지하고, 생활밀착형 활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활동은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오현승의 봄내아리랑, 춘천 시민들에게 공감을 받아 보편적인 아리랑으로 불리기를 기원한다. 미음계의 자진타령장단. 후렴 6장단에 본절 6장단이다. 아리랑의 위상에 더해지고, 창조적 전승에 기여하길 바란다. 오현승의 봄내(춘천)아리랑 탄생! 진심으로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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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국악계 10대 뉴스 1차 선정, 29題2022년 국악계의 이슈, 성과, 변화상을 볼 수 있는 국악신문 선정 ‘국악계 10대 뉴스’ 1차 26제가 선정되었다. 2차 선정위와 원로자문단의 최종 심의를 거쳐 ‘10대 뉴스’ 선정, 29일 발표한다. 21일까지 각 기관 단체 홍보팀을 통해 40여제를 응모 받아 22일 1차 선정에서 24제를 아래와 같이 선정했다. 제1차 28제 선정 뉴스(응모 順) 1 조선일보, 조순자 가곡 가사 보유자 방일영국악상 수상 2 국공립 국악단체 수장 임명(선정) 난맥상ㅡ국립극장장(미정), 국립국악원장(낭설), 국악 방송(비전공자 임명 논란), (사)국악협회장(교체 미완) 3 국립국악원, 송년 공연 성공 이룬 ‘임인진연’ 4 안숙선 가야금병창에서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로 재지정 5 2013년 시작된 아리랑 주제 ‘서울아리랑페스티벌’ 행사 폐기 및 총감독 별세 6 문화계 별 이어령, 김지하 선생 별세 7 정선군과 40개 지역 아리랑 전승단체 참여, 아리랑 등재 10주년 기념,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비 건립 8 문화재청, 국가 종목지정 전승공동체 맞춤형 지원 제도화 발표(아리랑, 제다, 씨름, 해녀, 김치담그기, 제염, 온돌문화, 장 담그기, 전통어로방식-어살, 활쏘기, 인삼재배와 약용문 화, 막걸리 빚기, 떡 만들기, 갯벌어로) 9 국립극장, 해외 초청 공연 호평 받은 ‘트로이의 연인’ 10 유튜브 아리랑 3600곡 탑재 ‘정창관의 아리랑’ 기념공연 11 문화재청,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 12 문화재청, 문화유산 가치보존을 위한 한국 원칙’ 선포 13 전국노래자랑 진행자 송해, 재담꾼 김법국(김뻑국)(1937년생/김진환)선생, ‘선소리산타령’ 최창남 (1935년생), 황용주(1937년생) 예능보유자 별세 14 문화재청, 2022년 대한민국 탈춤-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15 국립무형유산원, ‘명인 오마주-이은주, 김석출, 박봉술 편’ 공연, 16 문화재청, 창덕궁 후원에서 만나는 궁중 음악과 춤, ‘창덕궁 풍류’ 공연 17 문화체육관광부, '대한민국 문화도시' 지정(서울을 제외한 광역시권(인천, 대전, 부산, 대구, 광주), 경기권, 충청권, 강원권, 경상권, 전라권, 제주권 등 7개권역으로 구분-문화를 통한 지역의 지속 가능한 발전, 문화를 통한 지역사회 문제 해결, 지역주민 문화 향유 확대, 지역 문화 기반 조성 및 역량 강화 등을 달성 목표) 18 국립무형유산원, 인간문화재 10인‘, 전통예능의 품격’ 공연 19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밀양 분원’ 건립 확정 20 문화재청, 60년 만에 정책방향 대전환, ‘문화재’에서 ‘유산(Heritage)’ 개념 사용 21 문화재청, 600년전 세종대왕 ‘관현맹인(管絃盲人)’제도 재현 공연(관현맹인전통예술단), 경복궁 집경당 22 문화재청, 문화유산 가치보존을 위한 ‘한국원칙’ 선포(국제 사례 호주 ‘버라 헌장(Burra Charter)’, 영국 ‘역사적 환경의 지속가능한 관리를 위한 보존 원칙, 정책과 지침’, 캐나다‘캐나다의 역사적 장소 보존을 위한 표준과 지침’, 중국 ‘중국 문물고적 보호준칙’) 23 공연문화예술 6개 관계기관(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국립국악원, 국립극단, 국립아시 아문화전당, 국립중앙극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공연문화예술자료 수집․보존과 공동서 비스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 체결 24 문화체육관광부, ‘공연전통예술분야 경연대회 장관상장 지원기준 발표’(예비평가 최소 3년 이상 지속한 전국 규모 대회로, 상장심사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선정함) 25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60년 ‘한국민속예술제’ 기록의 산물, 민속예술 디지털 아카이브 ‘민속곳간’ 공개 26 국립무형유산원, ‘2022 대한민국 무형유산대전’-자연과 사람을 잇는 무형유산 13개 공연. 27 국립무형유산원, ‘이수자뎐’-무형문화재 이수자 이예랑, 박천경, 백진희, 공민선, 원진주 정수인, 김재민, 방지원, 성슬기 28 국악방송, 송년특집-22년 대통령상 수상자를 만나다 29 문체부, 예산이 2022년도 7조3968억에서 2023년 6조7408억원으로 9% 가까이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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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청풍승평계, 국내 최초 국악관현악단”120여 년 전 제천에서 결성된 '청풍승평계'가 우리나라 최초의 국악관현악단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제천문화원은 어제 제천시민회관에서 열린 학술세미나에서 국악계 인사들이 '제천의 청풍승평계가 직급체계를 갖추고 국악관현악단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며 주장했다.학설이 받아들여지면 우리나라 첫 국악관현악단 창단 시기는 1965년 서울시 국악관현악단에서 1893년으로 72년 앞당겨지게 된다. 세미나에서 1893년 제천시 청풍면에서 조직된 '청풍승평계의 존재'를 높게 평가하고, 전승과 보존·활성화를 위한 조례 제정을 강조했다. 윤종섭 제천문화원은 "이번 학술세미나로 청풍승평계를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자랑할 만한 국악단체로 전승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청풍승평계 국악단체는 우륵의 정신을 이어갈 목적으로 129년 전인 1893년 제천시 청풍지역에서 창단했다.청풍승평계는 창단 당시, 33명의 단원으로 출발했고 수좌와 통집, 교독, 총률 등 현재 국악관현악단의 지휘자와 악장 등처럼 직급도 갖췄다. 또 청풍승평계 단원들이 연주했던 악기는 현재의 국악관현악단처럼 다양했다.청풍승평계의 단원들은 풍류가야(정악 가야금), 산조가야(산조가야금), 양금, 현금(거문고), 당비파(현악·8음), 향비파(현악·8음), 피리(향피리), 젓대(대금), 장고 등을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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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남도국악원, 국악문화체험 '보배섬 국악나들이'국립남도국악원이 국악문화체험 프로그램인 '2022 남도문화체험-보배섬 국악나들이'를 운영한다. 체험프로그램은 이달 24~25일 일정을 시작으로 오는 12월까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1박 2일 일정으로 열리며 국악공연 관람과 강강술래 배우기, 모형 가야금 만들기 등 다양한 문화체험이 진행된다.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이수자 포함)에게 강강술래를 배워보고 특히 가족 단위 체험프로그램으로 모형 가야금을 직접 만들어보는 시간도 마련된다. 또 매주 열리는 국립남도국악원 국악연주단의 공연을 비롯해 명인명창과 우수 국악단체가 출연하는 토요상설공연도 관람할 수 있다. 체험신청은 국립남도국악원 홈페이지(http://jindo.gugak.go.kr)를 통해 할 수 있으며 매회마다 선착순 40명의 참가자를 모집한다. 남녀노소 누구나 참가 가능하며 이밖에 행사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국립남도국악원 장악과(☎061-540-4038)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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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정가와 영화의 만남…하윤주×조정래, 예술의전당 '소소살롱'예술의전당 아카데미가 주최하는 대담 프로그램 '소소살롱'은 국악에 대한 사랑으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국악의 매력을 전하고 있는 두 명의 예술가, 정가 보컬리스트 하윤주와 영화감독 조정래를 초청했다. 오는 25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음악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리는 이번 대담의 호스트는 하윤주다.하윤주는 '정가 여신'으로 주목받고 있는 젊은 국악인이다. 어린 시절 음악 선생님을 통해 우연히 정가를 접한 것을 계기로 이 길을 걷고 있다. 대학 진학 후에는 대중과의 접점이 적은 정가를 알리기 위해 연기, 방송, 라디오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도전해왔다.조정래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를 본 계기로 국악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후 소리를 배우고 국악단체 '바닥소리'를 창설했고, 2002년 나눔의 집에서 만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그림을 계기로 영화 '귀향'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2012년 국악고 합창단 이야기를 다룬 영화 '두레소리'를 제작했고, 2016년 영화 '귀향'을 개봉했다. 2020년 개봉한 '광대: 소리꾼'을 올해 재개봉했다.대담에서는 두 사람이 국악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 계기를 비롯해 두 장르의 시적인 미학과 작업 에피소드가 공유할 예정이다.프로그램은 세 파트로 구성되며, 전통적인 정가부터 영화 OST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대를 아우르는 곡들이 선보인다. '소소살롱'은 팬데믹 시기에 예술가와 소소하고 소탈하게 이야기를 나누자는 취지로 마련된 예술의전당 아카데미 대담 프로그램이다. 2020년 11월부터 한 달에 한번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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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악협회 교육개정에 대한 입장문 발표교육부의 2022 개정 교육과정·음악 교과서에서 국악 내용 삭제·축소가 예상된다는 이유에서전국 국악단체가 들고 일어섰다. 한국국악교육연구학회,국악교육협의회, 11인의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이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에 연대하는 단체들은 5월 15일 오후 3시 국악교육 정상화와 국악교육 수호 국악인의 연대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이에 100만 전국 국악인 단체인 (사)한국국악협회(이사장 임웅수)도 10일 오후 입장문을 통해 교육부의 각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사)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을 비롯한 임원진과 전국의 회원들을 대표하여 발표한 입장문은 ‘K-컬처’의 기반인 초·중·고교의 국악교육 개정 과정에 국악의 축소 여지를 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즉시 철회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국악이 문화경쟁력의 원천으로 ‘K-컬처’를 주도해야 할 시기에 음악과 교육과정에서 국악을 도외시 한다는 것은 묵과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한 것이다. 6개항으로 표명된 입장은 다음과 같다. 하나, 대학정책 지표 과목 분류에서 음악과 별도로 국악을 신설하라. 하나, 교사들이 수업과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성취기준 국악 교육을 위한 음악 요소와 개념 체계표 개정 작업을 즉각 중단하고 내용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라. 하나, 기초 연구와 교육과정 시안 개발 연구의 기획·운영을 부실하게 한 교육부는 관리 소홀에 책임지고, 관련자를 문책하고 연구책임자를 물러나게 하라. 하나, 새 교육과정을 제작하는 연구진의 서양음악 전공자에 편중된 교육연구 시스템 인사를 개선하라. 하나, 초등교사를 양성하는 전국의 교육대학에서 국악 관련 필수과목 수업 시수를 조정하여 올바른 국악 교육이 전달될 수 있도록 교사 양성 교육을 개선하라, 하나, 중등 교사 양성 기관인 사범대 음악교육과에 국악 전공 전임 교수제를 확대하라. 임웅수 이사장은 "우리 회원들도 교육부의 개정안에 분노하고 있다. 오늘 우리 임원진들은 입장문을 공유하며 교육부에 우리의 입장을 전하여 개선을 촉구한다. 또한 국악교육 관련 단체와의 연대를 통해 국악인 전문 단체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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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교육 과정(안)에 국악교육 실종, 국악계 성토 빗발전국국악교육자협의회를 비롯하여 한국국악교육연구학회, 국악교육협회, 11인의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가 화를 참지 못하고 피켓을 들었다. 교육부의 2022 개정 교육과정·음악 교과서에서 국악 내용 삭제·축소가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국악교육 퇴출? 청천벽력…명시해야", "졸속 음악과 교육과정 개정작업 즉각 중단하라" "우리음악 유지·발전, 교대 사범대에 '국악과' 신설해야" 국악은 전통유산인 동시에 동시대적 문화자산이다. 국가의 무형문화유산에서 으뜸이다. ‘한국적인 것’을 표현하는 모든 장르에서 반드시 함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국악과 관련해서는 몇 년에 한 번씩 소동이 있어 왔다. 교육부의 국악교육 정책개정(안) 과정이나 교육현장에서의 양악(서양음악)과의 불균형 문제 때문이다. 이번에도 '2022 개정 교육과정'(안) 마련을 위한 용역사업 결과물에서 터져 나왔다. 이런 결과는 전례에 비쳐보면 있을 법한 일이다. 바로 개정 교육과정'(안) 용역 작업 수행자 중에 국악전공자는 없었다는 데 있다. 그 결과로 2022개정 음악교과서에서 국악 내용이 삭제되거나 축소 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고시 예정 '음악과 시안 개발 연구 추진과정 및 초·중등 음악과 내용체계 개선안'에 따르면 2015년 개정에 담긴 '음악 요소 및 개념 체계표'를 '성취기준 해설로 통합·재배치한다'라는 내용으로 바꿨다. 기존 체계표에는 '장단' '장단의 세' 등 국악 개념이 담긴 체계표가 사라지면 고유한 국악 요소와 개념 체계가 무너지고, 학교 국악교육이 전면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과정에는 '생활 속에서 활용되고 있는 국악을 찾아 발표한다' 등 국악과 관련된 성취기준이 명시되어 있었는데, 이번 개선안에는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성취 기준'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경우 서양음악 전공자가 대다수인 집필진이 국악에 대한 내용을 쓰기가 어려워 사실상 교과서에서 국악이 축소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130여개 국악단체는 졸속으로 추진되는 음악과 교육과정 개정 작업을 즉각 중단하라며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 개발 연구에 참여한 위원 대부분이 서양음악 전공교수 출신이라고 반발하였다. 이는 정부가 애초부터 용역연구 관리에 부실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교육부는 나름의 변명을 하고 있다. 국악을 축소하거나 과정을 삭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교육학적 설계 원리 및 새로운 문서 양식으로 인해 통합·재배치하는 것에 대해 오해라고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국악의 본질을 이해하고 민족적 정서 공유와 국악의 세계화 기반 마련을 위해 교육과정 설계가 중요한데도 국악전공자의 참여를 배제했다면 이 자체만으로도 오해의 여지를 갖게 한 것이다. 이 소동으로 교육부에 대한 국악계의 반발은 더 근본적인 제도 보완을 요청하게 되었다. 즉, 교대와 사범대 음악교육이 대부분 서양음악 중심인 것에 대해 대학정책 지표과목 분류에서 음악과 별도로 국악을 신설할 것을 촉구했다.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사범대와 교육대에 국악과 신설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국악계 한 원로는 예악정신 함양이 급선무라며 ‘예약(禮樂)’을 전공하는 예약전문대학원대학이 설립되어야 한다고 큰 주문을 하기도 했다. 급하면 돌아가라 했다. 이제 차분히 원래의 국악 사상으로 돌아가 예악정신을 되찾는 교육을 하는 것도 국악교육의 난국을 정비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양악관과 우리 전통음악관과는 근본이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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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청년예술가들과 함께 ‘DAC 문화가 있는 날’대구문화예술회관은 3월부터 11월까지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 ‘DAC 문화가 있는 날’을 진행한다. 그 첫 번째 무대로 국악단체 「트리거 Trigger」공연이 3월 30일 오후 7시 30분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에서 공연한다.올해 첫 선을 보이는 ‘DAC 문화가 있는 날’은 시민들이 일상에서 문화를 쉽게 접하고 문화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 관객들을 찾아간다.이번 프로그램은 지역의 청년예술가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무대이다.‘DAC 문화가 있는 날’ 첫 무대는 창작국악단체 「트리거」가 무대에 오른다.가야금 이송희, 거문고 최현정, 아쟁 박필구 등 국악 현악기 연주자로 구성된 트리거는 국악을 공부하는 선후배간 인연으로 시작되었다. 가야금, 거문고, 아쟁 세 악기 구성은 폭넓은 음역대로 현을 활용한 다양한 음악적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뜻을 모았다. 지속적으로 전통 민속악과 오늘날 창작음악을 함께 공부해 왔던 이들은 현악기 고유의 어법을 활용해서 국악 창작분야에 다양성과 신선함으로 관객들에게 국악의 예술성을 전달하고자 한다.이아로 작곡의 <가야금을 위한 망향>, 이정호 작곡의 <거문고 독주를 위한 Burning>, 박필구 작곡의 등을 연주하며, 우리 고유의 악기인 현의 언어를 활용해 과거와 현대 음악을 표현하고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이 외에도 타악 김동민, 신수현, 판소리 백채린, 피아노 이창희 등이 특별 출연하여 판소리 <춘향가> 중 ‘방자, 춘향 부르러 가는 대목’을 재구성한 <수작: 방자와 춘향>과 김성진 작곡의 <경기시나위 주제의 의한 금명>을 연주해 공연의 다채로움을 더한다.공연 입장료는 전석 1만원이며, 대구문화예술회관 홈페이지 또는 티켓링크에서 예매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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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악협회쟁송수습위원회, “실효성 있는 대책 강구” 다짐2020년 4월 06일 발생한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선거로 인한 당선무효소송은 국악협회 6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잠복해 있던 운영 모순과 수장들의 무원칙한 행태가 만들어 낸 ‘일어날 수밖에 없는 예고된 사건’이다. 그러므로 쟁송 전말 파악 정도가 아닌, 수습 여하에 따라서는 한국국악협회가 재탄생하는 기회가 되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는 많은 중진 원로들과 한쪽으로 기울어 있던 전국의 지회 지부장들의 변화된 인식임이 파악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5일 1차 수습위 결성을 알린 성명서 발표 10일 후, 오늘 수습위원회 회의는 "언제까지 강 건너 불구경만 할건가”라는 지탄은 받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및 관련 국가 기관과 그동안 회비만 내던 일반 회원 일부는 "대표 국악단체 운영이 이 정도였나?”라며 이후 결과에 주목하는 상황을 맞았다. 한 수습위원에 따르면 "성명서 발표 이후 많은 이들로부터 목소리를 청취하고 있다. 회원 모두가 비장하고 비상한 마음으로 수습 방안 회의를 한다.”라고 했다. 양비론이나 아시론이 아닌, 진정한 국악협회 발전을 위한 이사장 사퇴와 원고 소 취하를 항소심 판결 이전에 받아 내고 2022년 3월까지 수습과 새 출발 작업을 완료한다는 결의안을 내고, 그에 따른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이에 응하지 않는 측에 대한 제제 강도인데, 이는 대외비로서 밝힐 수 없다고 했으나 변호사 선임 등 문제도 거론하는 것으로 보아 매우 강경한 조치가 마련될 것으로 예측된다. 수습위는 오늘 회의 결과를 성명서로 알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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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수준의 이 시대 국악 무대, 공감시대 기악 차이(差異)’국립국악원(원장 김영운)는 오늘 10월 6일(수)부터 7일(목)까지, 그리고 12일(화)부터 14일(목)까지 창작국악을 주제로 한 기획공연 ‘공감시대 기악 차이(差異)’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오후 7시 30분에 5회에 걸쳐 선보인다. 전통에 기반한 독창적인 창작 활동을 펼치는 예술인을 초청해, 국악기의 음색을 최대한 살린 자연음향과 루프스테이션(일정 구간을 녹음해 반복재생하는 악기) 등을 활용한 전자음향까지 아우르는 다채로운 무대를 마련했다. 잠비나이, 동양고주파, 불세출, 바라지, 이지영, 이용구, 서은영, 황진아, 백다솜, 김소라 그리고 손성국, 손다혜 … 전통에 기반한 창작으로 시대와 경계를 넘나들며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예술가들의 무대 5회에 걸쳐 선보이는 이번 공연은 전통과 창작의 영역을 넘나들며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무대로 선보인다. 공연 첫 주인 6일과 7일에는 독주자로 활동하는 다양한 색깔의 연주자들이 저마다의 색상으로 무대를 물들인다. 중견연주자 이지영(가야금), 이용구(대금), 서은영(해금)의 첫 공연(6일)을 시작으로, 실험적 기법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차세대 연주자 황진아(거문고), 백다솜(대금), 김소라(타악)가 두 번째(7일) 무대를 이어 간다. 둘째 주인 12일부터 14일까지의 무대는 작곡자와 연주단체의 공연이 이어진다. 12일 무대는 전통 어법을 사용하는 작곡자 손성국, 손다혜가, 13일은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오고 있는 국악단체 ‘불세출’과 ‘우리소리 바라지’가, 마지막 14일에는 세계적인 무대에서 인정받은 실력파 밴드 ‘동양고주파’와 ‘잠비나이’가 선보인다. 작곡자인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박상후 부지휘자의 해설 더해 공연 이해 도와 5회 동안 펼쳐지는 이번 공연의 사회와 해설에는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박상후 부지휘자가 맡아 출연자와 인터뷰도 진행하며 공연의 이해를 돕는다. 작곡자로도 활동 중인 박 부지휘자는 관객의 시선에서 음악적 깊이를 쉽고 재미있게 전할 예정이다. 아울러 이번 공연을 더욱 재미있고 안전하게 즐기기 위한 이벤트도 함께 진행한다. 여러 명이 모이기 어려운 코로나 시대의 ‘혼공족’을 위해 정가로 관람권 1매를 구매한 경우, 국립국악원이 제작한 코로나키트(마스크, 마스크줄, 손세정제, 간식) 등을 증정한다. 국립국악원 기획공연 ‘공감시대 기악 차이(差異)’는 8세 이상 관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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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대구최계란명창전국아리랑경창대회 대상에 이상우씨 수상지난 21일 토요일 오후 5시 대구 달성문화센타 대강당에서 명창부 이상우(58·대구) 씨가 지정곡 '대구아리랑'과 자유곡 '김옥심제 정선아리랑 ' 으로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회장 정은하)가 주최한 제15회 대구최계란명창전국아리랑경창대회에서 영예의 대상을 차지했다. 참가자는 제주에서 강원도까지전국 국악단체와 아리랑 전승단체에서 총 60 개팀이 참여했다. 명창부는 15 명, 단체부 15개 단체, 나머지 일반부 총 60여단체가 참가했다. 조희진(정선군), 손정자(정선군), 이유정(포항시), 손영미 외 6명(제주시)이 명창부, 일반부, 학생부, 단체부에서 각각 금상을 수상했다. 부문별 아리랑 경창대회 입상자는 아래와 같다.▷명창부 진정남(은상) 홍순옥(동상) 김옥자(장려상) ▷일반부 김경숙(은상) 김쾌우(동상) 신정자 정지선(장려상) ▷학생부 신유딧(은상) 신예진(동상) 이예나·박세아 외 2명(장려상) 박민지 박서현 이태희 서민호 박제인 박신우(특별상) ▷단체부 서금옥 외 9명(은상) 최분이 외 18명(동상) 함미경 외 4명·이종명 외 13명(장려상) 정은하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장은 "최계란대구아리랑경창대회는 대구 출신 최계란 명창이 1936년 밀리온레코드에서 취입한 '대구아리랑'을 2005년 다시 찾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했다"면서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 19로 대면 축제를 하지 못했지만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이 시대의 노래인만큼 대구아리랑이 대구시민의 레파토리로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그 역할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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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이 걸어 온 길 18국악신문 특집부 박헌봉 선생의 <國樂運動 半生記>는 해방전후 국악의 위상 정립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를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자전적인 글이다. 이를 「국악신문」은 제98호 2000년 10월 25일자부터 재수록 하였다. 취지는 당연히 국악의 중심이 민속악에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이번 제6회는 ‘초대 내각마저 국악을 외면’하여 설득하고 이해시켜 지원하게 하는 상황을 회고한 대목이다. 국악학교설립기성회는 이승만 초대 내각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래서 요리집 청향각(淸香閣)에서 주요 각료들을 초청하여 국악감상회를 개최했다. 우선은 각료들이 국악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범석 국무총리 이하 9장관 3처장을 대상으로 선생이 국악의 가치를 설하고, 이어 김소희와 박귀희 명창을 통해 국악학교설립기성회의 난관을 호소했다. 공연은 판소리, 민요, 기악곡, 춤 등 전 분야를 통해 국악의 분야를 보여주었다. 각료들은 나름 심취한 모습으로 박수갈채를 보냈다. 더불어 일부 각료는 자진하여 지원을 하겠다는 언약도 하였다. 그러나 선생은 전례로 보아 이 언약을 액면 그대로 믿지는 않았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언약한 각료를 개별 방문하여 도움을 청하려고 연락해도 정무가 바쁘다는 답변만이 올 뿐이었다. 다만 총무처장 전규홍, 동아일보 사장 최두선, 채신부 장관 후보 장기영씨는 격려와 후원금을 지원해 주었다. 이 후원금은 유용하게 쓰게 되었다. 1949년 7월 경, 부민관(府民館) 개관기념 공연으로 ‘향토민요대전(鄕土民謠大典)’을 준비할 수 있었다. 해방후 전국 대상 지역민요를 무대화 한 것은 처음 있는 일로 규모도 컸고, 의미도 있어 꼭 치러야 할 무대였다. 이 기념공연에는 신익희, 윤보선, 이기붕 등 주요 인사들이 참관을 하여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결과로 정부에서 2백 3십여만환의 보조금을 받게 되었다. 물론 큰 돈은 아니지만 국가 지원금이라서 인건비를 제하고는 예산을 비축하기로 하였다. 1950년 봄, 시민위안 공연을 준비했다. 시민위안이라는 명분은 실내보다는 야외여야 했고, 창경원이라면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문제는 이승만 대통령이 창경원 등의 궁궐을 보호하라는 엄명이 있어 이를 관리하는 구황실재산관리국이 이를 용납할 리가 없다는 소문이나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장 이기붕을 만나 요청했다. 예상대로 이기붕은 이승만 대통령의 허가를 받아내었다. 당연히 구황실재산관리국 이병주 국장은 대통령의 용단을 따르겠다며 허가와 관련한 협조를 하겠다고 했다. 장소문제가 해결됨으로 6개 국악단체를 동원하여 재담 같은 프로그램을 배치하는 등 시민위안을 목표로 구성했다. 공연료는 창경원 입장료 80원에 20원을 더하여 받는 것으로 낙착(落着)을 보았다. 대회는 대성공이었다. 돈암동과 원남동이 막힐 정도라 기마대가 출동하여 공포탄을 쏘며 관리할 정도였다. 당시 여론은 해방후 최대인파 집결이라고 보도했고, 창경원 관객도 최고였다고 하였다. 시민위안대회의 성공 여세는 이어져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이를 대학생 국악행사로 방향을 정했다. 당시 선생의 장남 예종(당시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3년)을 통해 전국 대학생 대상 학생국악동연회(學生國樂同演會/회장 연세대생 박노우)를 조직, 450여명의 회원을 확보한 상태였다. 이 공연 역시 국악보급을 위해서는 대학생들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는 당면과제로 관심 속에 준비되었다. 학생 중에는 호기심으로 회원이 된 이들도 많았지만, 의외로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학생들이 있었기에 고무되어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행사는 7월 3일, 그러나 8일을 남기고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당연히 행사는 무산되었다. 이 전쟁은 모든 분야의 발전을 가로막았으니 국악에도 지대한 지장을 주었음은 물론이었다. 특히 대학에서의 국악 운동은 싹을 틔우지도 못한 것이다. 제7회는 ‘자유당 때 大統領에게도 呼訴’라는 제하로 한국 전쟁 후의 상황을 증언하였다. 폐허에서 국악의 씨를 다시 틔우려면 당연히 재정이 절실했다. 그래서 대통령에게 직접 호소할 기회를 갖고자 했다. 최규남 문교부장관에게 가능하도록 다리를 놓아 달라고 협의하였다. 그러나 소식이 없었다. 다시 내무부장관 이익홍을 찾아가 국악을 살릴 길을 열어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통보가 왔다. 그런데 단 30분만 시간이 된다는 것이었다. 다급히 대학생 중에서 기량있는 학생을 선발하고 명인 명창을 꾸려 경무대로 갔다. 가설로 꾸민 무대 옆에는 대통령 내외가 앉았고, 그 옆에 두 장관이 양수거지(兩手据地)로 서있었다. 친히 방문자를 악수로 치하해 주어 안심한 분위기에서 공연을 하였다. 대통령도 진지한 분위기로 함께하는 것에 고무되어 공연은 예정보다 20분을 더하여 끝났다. 대통령 내외의 미소를 본 박헌봉 선생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각하 자고로 예와 악이 무너지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는데 지금 우리 현실이 바로 예괴악붕(禮壞樂崩)입니다. 각하께서 지금 칭찬하신 명창과 명인들이 연습할 장소가 없어 방황하고 있읍니다.” 이에 두 장관이 뒤에서 옷자락을 당기며 말렸다. 그래도 선생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말을 이었다. 그러자 당황한 최장관이 말을 가로 막았다. "각하 대학생들과 국악인들에게도 매년 일정액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거짓 보고이지만 선생은 두 장관의 체면을 위해 꾹 참았다. 다행히 대통령이 두 장관에게 양악만큼 국악에도 지원을 하라고 지시하여 결국 소득은 거둔 것이다. 이렇게 경무대를 방문하여 호소했건만 돌아오는 것은 예산 부족이라는 답변이었다. 결국 선생은 화병으로 병석에 들게 되었다. 병명은 황달(黃疸)이었다. 그러나 적수공권(赤手空拳)에 치료비 문제로 입원은 못하고 여관방에서 견뎌야 했다. 무교동의 락천여관인데, 주인장은 의원까지 불러 치료해 주었다. 물론 여관비와 치료비도 모두 외상이었다. 다행히 와병 7개월만에 차도가 있어 일어나게 되었다. 선생은 50을 넘긴 나이에 홀로 눈물 짖는 신세로 서글픔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1958년 2월, 사경(死境)을 헤치고 나서 다시 뛰었다. 김은호, 문영희, 이병각, 박귀희선생과 함께 장교구락부(張橋俱樂部)를 구성하고 학교설립 후원금을 모집하는 일에 매진했다. 유수한 재벌들과 사회 동호(同好)를 찾아가 호소했다. 다행히 삼성의 이병철씨만 500만환을 기부했다. 이 500만환으로는 학교설립은 불가했다. 1959년 초, 이재학 국회부의장을 필두로 이병철과 자유당 중진들을 운니동 박귀희 선생 댁으로 초청하여 저녁을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선생은 산궁수진(山窮水盡), 이 자리가 최후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선언(宣言)하였다. 선생의 떨리는 손에는 원고뭉치가 들려있었다. "각종 경축 행사나 외국 귀빈이 올 때면 국악을 소개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써왔습니다. 장고와 가야금을 둘러메고 고생을 하면서도 언젠가는 사람들이 국악의 진가를 알게 될 날이 오겠거니 했습니다. 그러나 당대의 고관대작인 여러분조차도 이처럼 국악을 무시하고 홀대하는 것을 보면 지난날 우리들의 노고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나는 오늘을 마지막으로 이 4천장에 달하는 원고를 모두 불 살라버리고 심산유곡의 절을 찾아 여생을 마칠 생각입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한참 만에 이 부의장이 다른 장관들은 정무에 바쁜 탓이고, 문교부와 재정부에서 각 1천만환을 준비한다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이 말이 끝나자 이병철씨가 받았다. "정부에서 그만한 돈을 기부한다면 나도 작년의 두 배를 기부하지요.”라고 밝혔다. 예상 외의 결과다. 총 3천 5백만환이 약속 된 것이다. 그러나 정부 지원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다. 대신 이하단, 이용주, 방일영씨 등이 참가하여 관훈동에 학교 부지를 사고 설립 인가를 받게 되어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 9회는 국악예술학교 설립 과정을 진술한 부분으로 마지막 회의이다. 1960년 3월 5일 국악예술학교가 개교되었다. 학생은 27명이고 교사는 22명이었다. 선생은 "나는 이날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 5천년 한국역사상 최초의 국악예술학교가 그 문을 연 날이기 때문이다. 초대 교장으로 취임한 나는 그날 목이 메어 취임사를 제대로 읽을 수 없었고, 자리를 같이 했던 국악인들도 모두 뜨거운 감루(感淚)를 흘리고 말았다.”라고 회고했다. 이는 선생뿐만 아니라 당연히 우리 국악사에서 기념할 만한 일대 경사인 것이다. 학교가 설립되었으나 시국은 격동에 휘말렸다. 개교 15일 만에 4.19가 일어났고, 8월에는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 모든 기관장들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아세아재단’의 후원을 받는 전국 민요조사이다. 유기룡, 지영희, 김광식, 이태극, 정병욱 등이 함께한 조사로 전국 산간벽지에서 조사되었다. 70세를 넘긴 이들을 대상으로 희귀한 민요 300여곡을 채록하였다. 이와 병행하여 무형문화재로 지정할만한 민속음악을 조사하여 나갔다. 1964년 4월 서울시의 협조로 관훈동에서 전 조선신궁(朝鮮神宮) 사무실인 남산으로 교사를 옮겼다. 위치나 규모에서 개선되었다. 학생수도 270여명, 20여종의 악기 300여개를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 교과 과정도 국어 영어 수학 같은 일반과목도 하고, 창작, 농악, 무용, 시종 등 과목도 늘였다. 또한 구미 각국의 국제 대회 등에도 출전시켜 예능을 향상시켰다. 이상과 같은 선생의 공적은 문교부 표창과 서울시 문화상 등을 수상하였다. 공적을 인정한 것이다. 반생의 회고록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아직도 우리나라 국악의 길이 험준하기만 하니 국악의 참다운 민족음악의 자리에 서는 날까지 헤쳐 나갈 각오이다.” 국악조직창설 및 관련활동, 국악예술학교 교육 및 산하 기관 창설, 「창악대강」 편찬 등 저술활동, 민요채집 및 무형문화재 조사 연구 등에서 박헌봉 선생의 업적은 길이 빛난다. 그 업적을 「국악신문」은 36년만에 다시 게재하여 국악사 정립과 참 국악인의 생애를 조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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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이 걸어 온길 17국악신문 특집부 「국악신문」이 국악의 위상정립 사업에서 박헌봉 선생의 업적을 소중하게 기리는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선생의 <國樂運動 半生記>를 정리, 조명하는 두 번째 글이다. 박헌봉 선생은 해방전후 민속음악 학자로는 거의 유일한 분이다. 국악예술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을 역임하며 민속음악가들을 배출시키고 세상에 국악의 맛과 멋을 되찾아 주기에 열성을 다했다. 그래서 이 분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민속음악의 길을 찾는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국악계의 큰 스승’, ‘국악교육의 선구자’, ‘국악계의 태두’라고 불리는 소이(所以)인데, 그런만큼 민속음악의 길로 가는 이들은 선생의 생애를 동경하게 되었다. 그 생애를 처음으로 스스로 정리한 것이 <國樂運動 半生記>이다. <國樂運動 半生記>는 월간 시사잡지 신동아(新東亞) 1968년 7월호부터 9회에 걸쳐 연재된 것을 국악신문 제98호 2000년 10월 25일자부터 분재(分載)한 글이다. 당시 국악신문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는데, 이제 주요 내용을 정리하여 선생의 국악운동 업적을 되돌아보기로 한다. ‘반생기’란 자전적인 표현이다. 작고(作故) 10년 전에 쓴 글이라는 시점으로 볼 때 사실상 전 생애를 기술한 전기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선생은 이 글 외에 회고적 진술은 없었다는 사실에서 입증이 된다. 이 ‘반생기’ 첫 회 ‘樵童의 노래 듣고 樂에 눈떠’는 태어난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서 망추정(望楸亭)이라는 서당을 다니던 시절의 소리를 가슴에 담는 과정을 그렸다. 9세 때의 어느날, 서당 가는 산모루에서 나무꾼의 지게목발 소리 "골짝 골짝 산골짝에 줄기 줄기 비묻어 온다~”를 듣게 된다. 이후 흥겨움에 겨워 이 소리를 입속으로 따라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듬 해 마을에 굿패가 들어와 서당길을 멈추고 소리판에 빠져들게 되었다. 17세쯤 사내의 가야금 병창 ‘새타령’에 정신을 빼앗긴 것이다. "그 소년의 가야금 병창을 들은 뒤부터 전보다 더 한층 악을 동경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선생의 성향은 서당 선생과 가족들에게 노출되어 강하고 심하게 질책을 받게 되었다. 두 번째 ‘3.1운동 후에 書堂을 하직’에서는 3.1운동을 겪고 서당 다니는 것을 작파한 이후의 정황이 진술되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회의를 갖게 된다. 서당과 가정에서의 수업에서는 순임금은 오현금(五絃琴) 여주를 즐겼고, 공자는 "예와 악은 잠시도 사람이 멀리해서는 않된다(禮樂不可作須去身)”고 했음에도, 왜 소리를 좋아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지에 대한 반감으로 부터이다. 그래서 어린 나이이면서도 서당 공부에 등한하게 되었다. 그런데 다행이도 이를 이해한 5살 위의 형이 부모님을 설득하여 서울로 유학을 하게 되었다. ‘한성강습소’에서 6개월 만에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중동학교에 입학했다. 이어 1년 만에 휘문고보 2학년에 편입하였다. 이 때 수업은 1주일에 한 시간 음악 시간이 있었지만, 서양음악 중심이어서 만족할 수가 없었다. 서당 시절에 경험한 민속음악만한 매력을 얻지 못함은 물론이어서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울에서의 학업은 지식을 얻는 과정이었다. 이로서 서울에서의 생활 중에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음악에 대한 열망인 것이다. 당시 진주에는 가야금으로 유명한 김덕천, 장단 신고주, 가야금 병창 김종기씨가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이분들에게 가서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배우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가족들은 물론 종친들도 격노(激怒)하여 음악을 연구한다는 것을 극구 말리고 나선 것이다. 3회분 ‘族譜에서 除名당할 뻔’한 진술에서는 가족과 종친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매진한 과정을 그렸다. "나는 의연했다. 우리민족의 고유한 예술인 민속악을 연구하겠다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반상의 계급을 타파하여 세상에서 버림받은 광대들과 더불어 이 민족예술을 지켜나가겠다는 나의 의지는 오히려 더 굳어가기만 했다.” 가사(歌詞)를 연구하여 와전(訛傳)된 부분을 바로잡고, 가야금과 창(唱)을 공부하는데 몰두하게 되었다. 그런데 일제가 지방의 전통음악 활동까지 규제하고, 곳곳에 자리 잡은 일본인들의 횡포도 심해져갔다. 이에 따라 가족들의 만류도 말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암암리에 들어 안 상해(上海)로 가 임시정부 활동에 가담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한 의협심이었다. 결국 관부연락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넜다. 그러나 일본 하관(下關)항구에서도 상해행 배를 탈 수 없었고, 오사카에까지 가서 뱃길을 모색했으나 열리지 않았다. 두 달을 허송했다. 후회를 하였고, 상해 행을 포기하고 되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귀국하여 여러 가지를 모색하였다. 이 과정에서 진주의 음악인들을 규합하여 ‘진주음율연구회’를 조직하였다. 이 활동에 2년을 동분서주했다. 이 활동 과정에서 우리음악을 더 깊이 공부해야 한다는 자각을 했다. 그래서 다시 12년 만에 다시 상경하여 음악공부를 하기로 하였다. 처음 찾아 간 곳이 ‘정악전습소’였다. 8개월 동안 많은 공부와 음악적 교류를 하였다. 그리고 이어 ‘이왕직아악부’에 들어가 4개월간 공부했고, 이어 민속악의 총본산격인 최고 명창들의 조직체인 ‘朝鮮聲樂硏究會’에 입회했다. 여기서 이름 있는 이동백, 정정열, 송만갑 등의 명창들과 2년간 창법을 연구하였다. 이어서 역시 민속음악무용단체인 최경식과 박춘재가 주관하는 ‘朝鮮歌舞硏究會’에도 가입하여 경서도 가무(歌舞)를 연구하였다. 이렇게 하여 "4년 동안 정악, 아악, 민속악 등의 여러 분야를 연구하고 나니 내 나이 벌써 34세~”가 되었다. 실무경험과 당대 조선음악 명인 명창들과 함께 활동한 시기이다. ‘日帝時에 朝鮮樂部를 組織’은 선생의 활동상이 더욱 분명히 진술된 내용이다. 친일적인 단체인 ‘朝鮮音樂協會’에서 활동하며 함화진(咸和鎭/1884~ 1948) 선생과 함께 ‘조선음악부’ 신설을 추진하여 이를 성사시킨 것이다. 여기에는 남도 음악단과 경서도 가무단을 포함시킨 의미있는 업적이다. 이는 세 번의 시연(試演) 끝에 종로경찰서장 조선인 이사카(井坂)를 설득하여 허가를 받아 낸 결과였다. 그러나 대동아전쟁의 발발로 모든 계획에 직접적인 난관을 맞아야 했다. 조선어, 그 중에서도 남도 성음을 중심으로 하는 ‘춘향전’ 같은 판소리조차도 일본어로 고처 공연하라는 압력이 닥쳐 온 것이다. 더 이상 견디는 것은 헛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단체를 해산하자는 합의를 하고, 선생은 진주로 낙향을 하게 되었다. 이 때가 해방 17일 전인 1945년 7월 29일이었다. 감격의 해방을 맞았다. 8월 19일, 선생은 곧 바로 서울로 올라갔다. 그리고 민속음악인들의 대동단결체를 표방한 ‘國樂建設本部’ 창설에 중심 멤버로 참여하였다. "오랫동안 민속음악을 천시해온 사람들의 그릇된 인식을 깨우침으로서 민속음악을 제 위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국악(國樂)’이라는 어휘를 최초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이 같은 인식에서 단체명을 ‘국악원(國樂院)’으로 고치게 되었다. 원장은 함화진, 선생은 부원장으로 취임했다. 이 단체를 중심으로 실질적이고 본격적인 국악 중흥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활동 자금을 확보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마침 귀국한 ‘재미한족연합회’ 미주 대표단 김호(金乎/1884~1968)씨 등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힘을 얻어 다양한 연주자들과 행정인력을 확보하여, 미군정청 간부 56명을 초청하여 국악을 소개하는 특별공연을 준비하여 막을 올렸다. 이렇게 해방 직후 민속악 중심의 국악단체를 구성하고 주도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 당연히 선생이 조직과 진행에 적극 앞장선 것이다. 5회분인 ‘해방된 조국에서도 냉대 받아’에서는 적극적으로 시민 대상 국악부흥운동을 전개하나 양악(洋樂)의 수입으로 입지가 축소되는 국악계의 처지와 이를 타개하려는 선생의 노력이 진술되었다. 그 첫 작업은 빚을 내서 최고의 공연장인 명동 시공관(市公館)에서 국극(國劇) ‘대춘향전’과 ‘선화공주’를 공연한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애초의 시민 대상 국악을 알리는데 목적을 둔 것이었다. "비록 무거운 빚을 지었지만 우리는 무한히 기뻤다. 일반 대중이 국악을 외면하지 않는 한 국악의 장래는 어둡지 않다는 신념을 얻었기 때문이다. 암담하던 앞길에 서광이 비치는 것 같았고 국악인들의 파리한 얼굴에 생기가 감돌았다. 계속되는 공연 준비에 여러 날을 새워도 피로한 줄을 몰랐다.” 그러나 미군정의 세월이 길어짐에 따라 서양음악이 학교 교육과정에서는 물론 모든 공연 등에서 주객을 전도시켰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적극적인 운동으로 국악학교의 존재 필요성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국악을 이해하는 정부 고관들을 찾아다니며 호소해야 했다. 우선 서울시경 장택상(張澤相/1893~1969) 청장을 찾아가 논의하는 동시에 명월관(明月館)에서 국악감상회를 열어 기금을 마련하기로 하였다. 이 첫 감상회는 당시 서울시장 김형민, 경무부장 조병옥 같은 관료와 박흥식, 백낙승, 조준호 같은 갑부와 군정청의 미군 장교 등을 초청하여 김소희, 박귀희 선생의 판소리를 내세워 갈채와 후원 약속을 받아냈다. 명월관 감상회 성공을 계기로 큰 계획이 수립되었다. 곧 ‘國樂學校設立期成會’ 결성이다. 크고 실직적이고,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다목적의 학교 설립 사업이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예상했던 제반 사항이 기대와는 미치지 못하였다. 기성회 중요 참여자 중에 이탈자가 생기게 되었고, 당초 약속한 기부금 액수도 크게 차이가 나는 등 의외의 난관이 이어졌다. 본격적인 국악중흥운동 열기가 크게 흔들리고 혼동을 겪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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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이 걸어 온 길 15국악신문 특집부 국악신문의 사시와 창간이념을 바탕으로 한 언론사로서의 지향성은 기사와 사업과 발행인의 발언 등을 통해 실현된다. 지난 회에서는 사시를 확인한 바 있는데, 이번 회에는 3년간의 신년사를 통해 국악신문의 지향정신을 살피기로 한다. 모든 기관 단체나 기업은 구성원을 대상으로 새해의 설계를 제시한다. 신문은 지면을 통해 축시나 저명인사를 통해 구성원과 독자들에게 문제의식을 제시한다. 국악신문 역시 매년 1, 2면을 통해 유관 단체장과 발행인의 신년사를 발표했다. 이 중에 창간 3년까지의 신년사를 대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3년 총 48호는 주간신문 언론사로서의 체재는 정립된 시점이다. 1995년 1월 17일자 제10호, 1996년 1월 23일자 제33호, 그리고 1997년 1월 28일자 제48호 신년사를 살핀다. 제10호는 1995년으로 창간 후 맞는 첫 신년으로 광복50주년이란 뜻깊은 해이다. 1면과 2면을 할애하여 5인의 신년사를 게재하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1면은 당시 이성림 18대 국악협회 회장의 신년사를 수록했다. 2면에는 김호규 발행인, 허규 창우극장 대표, 김선봉 봉산탈춤 예능보유자, 황재기 국악협회 농악분과위원장의 신년사를 수록했다. 이성림 이사장의 신년사는 당시로서는 협회 기관지로서의 기능을 겸했기 때문에 유일한 발표 지면이었다. 1면이 할애가 된 사실에서 알 수가 있는데, "우리의 문화유산인 국악의 메신저 국악신문을 통해~”라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당시 전 분야의 화두였던 ‘세계화’에 대해 주체의식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전제로 "찬연하게 계승되어 온 문화유산의 역사적 의미를 주체화 할 때 국악은 그 중심에 있고 문화의 집결체임으로 국악을 통한 전통문화 진흥을 꾀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말미에서는 "국악계는 물론 문화계 전체의 소중한 자산으로 국악예술의 대변자”라고 국악신문의 위치를 제시하기도 했다. 국악신문 발행인으로서의 신년사는 처음이다. 김호규 발행인은 <국악인 모두가 보급과 교육에 힘을 다하는 해가 됩시다>라는 제하의 신년사이다. 먼저 지난해 ‘국악의 해’가 국악 발전의 획기적인 계기였다고 긍적적인 평가를 했다. 그리고 그런 국악에 대한 국민적 관심에 부응하여 국악신문이 창간되었다는 시대적 배경을 먼저 밝혔다. 이어 국악교육의 문제점으로 "어렸을 적부터 서양식 음악교육을 받아 온 사람이 국악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이러한 교육에서의 편향성은 방송현상도 마찬가지라고 하며 "현재 각 방송국의 국악 편성을 보면 아예 없거나 있어도 형식적인 구색만 갖추고 있어 국악 발전을 위해 새로운 모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이 두 가지 과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국악인과 국악단체가 앞장서야 한다고 했다. 국악신문의 1995년의 신년사는 국악교육과 보급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지향으로 내세운 것이다. 1996년 신년호는 1월 23일자 제33호이다. ‘96년 국악신문 사업계획’ 8개항을 발표한 해이다. 신년사는 국악협회장과 발행인 두 편이 수록되었다. 역시 1면에 국악협회 이사장 이성림의 신년사를 게재했다. 발행인의 신년사는 제2면에 수록하였다. 이성림 이사장은 "전통이 확립되는 해, 민족예술이 꽃피우는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이어 지난 신년사에 제기했던 세계화의 전제는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한 인식의 주체화라고 하였다. 그리고 국악신문을 ‘국내 유일의 국악전문지’라는 입지를 밝히기도 했다. 발행인의 신년사는 우선 ‘국악의 해’ 열기가 국악 보급으로 연결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였다. 그리고 ‘세계화’보다 현실적인 용어인 ‘국제경쟁력’을 위해 민족문화의 주체화가 우선한다고 전제했다. 이를 위해 방송의 역할을 강조했다. "국악을 발전시키려면 문화대국을 자부하는 프랑스와 일본을 배워야겠다.”라며 ‘문화예외론’과 ‘샹송 쿼터(quarter)제’를 제시했다. 전자는 문화는 일반 경제논리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후자는 프랑스가 실시하는 라디오 음악 방송에서 40%는 반드시 프랑스 샹송을 송출해야 한다는 문화정책이다. 그리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국악진흥법’ 제정을 주장하며 "국악진흥법을 제정하여 교육법을 보완하고 언론 매체의 전통문화 프로그램의 대대적인 개편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세 가지 제안은 매우 현실적이고 설득력있는 대안인 것이다. 1997년은 ‘문화유산의 해’로 신년호는 1월 28일 제48호로 발행했다. 신년사는 제2면에 두 편이 수록되었다. 국립국악원 이성찬 원장과 발행인의 신년사다. 이성천 원장은 <전통문화 계승보존 활성화 해>라는 제하로 정부가 선정한 ‘전통문화의 해’에 대한 의의를 전제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전통문화와 예술을 향수해야 한다.”고 했다. 발행인의 신년사는 <우리의 문화 그 멋을 찾아서>라는 제하이다. 전통문화 전승 보존을 국악신문 창간 이념이라며 "우리의 전통적이고 자랑스러운 문화예술을 발굴하고 보존하며 후손에게 전승시키기 위해 전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전국에서 활동하는 국악 전승 단체에 대해 "국악신문사는 전통문화예술의 홍보지로서 전국 방방곡곡, 음지와 양지에서 가꾸고 애호하는 국악인과의 대화의 광장으로서 등불을 밝히는 길잡이가 되겠다.”고 했다. 이상에서 창간 이후 3년에 이르는 신년사를 살폈다. 이를 통해 확인 되는 것은 발행인의 직접적인 발언을 통해 신문사의 경향성을 파악 할 수 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 째, 첫 신년사는 국악 교육 개선을 지적하며 국악신문 자체가 교육자료 발굴에 노력할 것임을 제시했다. 둘 째, 1996년 신년사는 문화대국의 ‘문화예외론’과 ‘샹송 쿼터제’, 그리고 국악진흥법 제정을 통해 음악교육 개선의 대안을 제시하였다. 셋 째, 전통문화 전승 보존을 위해 국악신문이 전국의 국악인들과 대화의 광장으로서 등불을 밝히는 길잡이 역할론 자임이다. 이 같이 신년사에서 발행인이 밝힌 것은 국악신문사의 사시와 창간이념의 실천을 스스로 다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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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사반세기 만에 거듭납니다 (국악신문 재창간 자문위원회)[알림]국악신문, 사반세기 만에 거듭납니다 8월 인터넷 국악신문과 오프라인 주간 국악신문 병행 발행 1994년 9월 창간한 지령 25년의 국악전문지 ‘국악신문’이 오는 8월 재창간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결성했다. 지난달 10일 6인으로 구성된 ‘국악신문 재창간 자문위원회’는 우선 5월 2일 ‘지역문화연구회’를 방문, 전국 국악 행사의 실상과 규모 등을 파악했다. 이어 주요 국악단체를 찾아가 7월 말까지 실무자들의 의견을 청취할 계획이다. 5월15일에는 메이저 일간지 출신 문화전문기자와 사업담당자를 초청해 인터넷과 종이신문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노하우를 공유하기도 했다. 한편 국악신문은 5월15일부터 인턴기자를 모집하고 있다. 최종합격자들은 경력기자들의 지도로 3개월 간 인턴과정을 거쳐 8월 재창간 시 수습기자로 활동하게 된다. 경력기자(편집위원)로 방송, 일간지, 주간신문의 베테랑 4인을 영입한다. 사업부도 신설한다. 대외사업이나 마케팅은 물론, 내년 재창간 1주년을 기해 설립되는 법인 업무를 중점적으로 담당할 예정이다. 지난 4월 초 재창간 준비 소식이 전해지자 국악계의 기대도 커지고 있다. 국내외 행사에 적극 참여 중인 아리랑 웹사이트 운영자 기미양 대표(벤처아리랑)는 "국악정책 관련 정론지가 절실하다. 주변에 주식 공모 참여를 권하겠다”고 전했다. 대금연주가 원장형 명인은 "기존의 틀을 깨고 언론의 기능에 충실한 국악계 대변지로 재창간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축하했다. ‘정창관의 아리랑’ 사이트와 함께 아리랑 유튜브를 운영하는 정창관 유튜버는 "국악신문도 핫 트렌드인 유튜브를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했다. 2020.05.18 국악신문재창간준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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